그러니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여리꾼이라면 하대하고 천대했다. 그런 여리꾼이 야자를 트듯 말하자 사내는 자신이 여리꾼에게 희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호통을 친 것이었다.

“아이고! 이놈이 눈깔이 까뒤집혀 어른을 몰라 뵙고 실언을 했습니다유! 죽으라시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주둥이와 콧구녕을 막고 뒤질 터이니 부디 하해같은 어른신이 불쌍한 이놈 목숨만 살려주십쇼!”

여리꾼이 설레발을 치며, 제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쥐는 시늉을 했다.

“그만 하게!”

사내가 건성으로 말리자, 여리꾼은 재빨리 손을 떼고 흥정을 계속했다. 

“내 보기에 지체 높으신 양반댁에서 나오신 것 같은데, 잘 아는 비단전이 있는데 그리로 모시겠습니다요. 어르신처럼 위엄 있으신 분께 딱 맞는 상전입니다요. 어르신 댁으로 시집가려고 그 물건이 팔리지 않고 꽃단장을 하고 있었나봅니다요. 실은 이번에 중국으로 사은사를 따라갔던 관원이 몰래 가지고 온 물건인데 정승 판서도 평생 한 번 입어볼까 말까 하는 최고 비단입니다요!”

정신없이 쏟아내는 여리꾼의 설레발에 사내는 잠시 머뭇거렸다. 뒤에서 두 사람의 흥정을 지켜보던 양반이 손에 들고 있던 합죽선으로 손바닥을 쳤다.

“잘해드릴 터이니, 어르신 가십시다요!”

여리꾼이 틈을 주지 않고 사내의 소매를 잡아끌며 앞장을 섰다.

“그렇게 좋은 물건이 있다니 구경이나 한 번 해보세나!”

사내가 잔뜩 거들먹거리며 여리꾼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양반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더니 여리꾼은 비단필이 시루떡처럼 빼곡하게 쌓여있는 선전으로 들어갔다. 선전 안에는 버렁이 깡총한 갓을 쓴 주인이 보루에 기대있다 인기척이 들리자 자세를 고치며 바르게 앉았다.

“이보게! 정말로 귀한 손님을 모셔왔으니, 일전에 대국에서 가져왔다는 그 비단 좀 보여주게!”

여리꾼의 말에 선전 주인은 일언반구도 없이 첩첩이 쌓여있는 비단필 중에서 한 필을 꺼내 여리꾼 앞에 내놓았다.

“이것 좀 보셔요! 조선 팔도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대국에서도 이만한 비단은 구하기 힘들꺼구먼요. 때깔 좋고 가볍고 애기 볼테기처럼 야들야들 보드라우며 질기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평생을 입어도 새 옷 같으니, 어르신 집안처럼 지체 높은 분들 아니시면 입을 양반님이 없습니다요!” 

“좋기는 하네. 한 필에 얼마나 하는가?”

사내가 내놓은 비단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 지 비단 값을 물었다.

“한 필에 사 자에서 탈차를 하면 되겠는가?”

값을 물어본 사람은 비단을 사러온 사내인데 그에게 답변은 해주지 않고, 여리꾼은 오히려 주인에게 뜻 모를 말을 했다.

“그거면 되겠네.”

선전 주인이 말했다.

“한 필에 얼만가?”

양반과 함께 온 사내가 다시 여리꾼에게 물었다.

“스물 닷 냥은 받아야 한다는구먼요.”

“무슨 비단이 금보다 비싸단 말인가?”

“어르신, 아무렴 비단이 금값만이야 하겠습니까요?”

“그 값이면 다른 비단 서너 필은 사고도 남겠네!”

“대국에서 온 최상품이요! 대국 비단도 그냥 대국 비단이 아닙니다요. 이 비단이 중국서도 비단으로 이름난 사천성 촉금이란 비단이오. 더군다나 양잠이 아니고, 야생에서 자란 산누에나방이 짜낸 실만 모아 만든 천잠사 촉금이란 말입니다요. 촉금도 엄청난데 촉금 중에서도 귀하디귀한 비단이란 말씀입니다요. 어르신은 학문도 높으니 촉나란지 뭔지에 사는 유비 아시지유?”

“비단 얘기를 하다, 뜬금없이 유비는 왜 나오는가?”

“촉금이 촉나라에서 제일가는 비단이고, 유비가 조조에게 보냈다는 비단이 바로 이 비단 아닙니까요? 그런데 유비가 조조에게 보낸 초금도 양잠 비단이지, 이 비단처럼 천잠사 촉금은 아니란 말씀입니다요. 조조도 입어보지 못한 비단인데, 비싸도 비싼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요!”

“그 사람 둘러치기도 잘 하네! 유비가 조조에게 비단을 보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고, 이 비단이 정말 천잠사인지 자네가 중국 가서 산누에나방을 직접 잡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내가 여리꾼의 입담에 체머리를 흔들며 따지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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