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장마당도 넓고 상전도 많으니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였다. 이런 상인과 장사꾼 사이에서 가려운 곳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여리꾼이었다. 일단 물건 살 사람을 물색하면, 여리꾼은 그를 꾀여 사려는 물건이 있는 상전으로 데리고 가 흥정을 붙이고 물건에 대한 설명도 하고 가격도 조정하며 거래가 성사되도록 중재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인데 방법이 특이했다.

여리꾼이 챙기는 돈은 물건 주인인 상인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물건을 사가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테면 여리꾼은 이미 상인이 정해놓은 물건 값보다 더 높은 값을 손님에게 부르고 거래가 성사되어 값이 결정되면 그 차액을 챙기는 방법이었다. 그 차액이 여리였다. 예를 들면 열 냥짜리 물건이면 열두 냥을 불러 팔리면 두 냥을 여리꾼이 챙기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여리꾼은 무조건 물건 값을 높이 불러놓고 한 푼이라도 더 받기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말품을 팔아 가격을 흥정했다.

“객주 어른, 여리꾼들이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 한 번 보고 가면 안 될까요?”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에게 여리꾼 구경을 하고 가자고 청을 넣었다. 최풍원은 여리꾼들이 입만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지 그게 너무 궁금했다.

“그러세나!”

윤왕구 객주가 순순하게 최풍원의 청을 들어주었다.

운종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상전들마다 문을 활짝 열고 길가에 물건들을 내놓고, 거리에는 장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싸전과 곡물전 앞에 내놓은 수십·백 개의 크고 작은 둥구미마다 곡식들이 그득그득하고, 피륙전에서 내놓은 횃대에는 오색 옷감들이 내걸려 펄럭이고, 사기전 앞에 빽빽하게 늘어놓은 그릇은 수도 장마당에 모인 사람마다 많았지만 그릇마다 기이하게 생긴 갖가지 모양새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장거리에는 두루마기에 갓을 쓴 양반님네들, 장옷을 입은 부인네들, 초립을 쓴 초립동이, 굴갓을 쓴 승려, 패랭이를 쓴 길손들과, 보퉁이와 등짐을 짊어진 부보상, 나귀를 모는 장꾼, 길마에 잔뜩 짐을 싣고 오는 우마꾼, 장작을 잔뜩 짊어진 나무꾼, 곡물섬을 싣고 지나가는 마차들, 사람과 우마와 마차와 수레가 한데 뒤엉켜 오가다보니 널찍한 대로가 소로처럼 복작거렸다.

“비단을 사려고 그러시오?”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이 중국 비단을 파는 선전 앞을 지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얼굴에서 약빠름이 잔뜩 묻어 기름챙이처럼 반들반들한 여리꾼이 선전 앞을 서성이던 어떤 사내를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다가가 물었다.

그 사내의 두서너 발짝 뒤쯤에는 빛이 은은하게 새어드는 고급스런 갓에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 술띠를 매끈하게 두른 또 한 사람이 헛기침을 하며 서있었다. 누가 봐도 품위가 느껴지게 차려입은 양반은 사내의 주인임에 틀림없었다. 주인임이 분명한 양반은 사내와 여리꾼이 하는 양을 보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눈요기나 하려는 걸세!”

여리꾼의 물음에 사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눈요기해봐야 안질만 생기지 뭔 소용이여. 내가 정말 잘 아는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갑시다!”

여리꾼이 사내에게 자기가 아는 집으로 가지고 했다.

“아니? 이 자가 어디다 대고 야자를 트는 거엿!”

사내가 인상을 쓰며 여리꾼에게 눈을 부라렸다.

여리꾼은 장마당에서 모든 사람에게 천대를 받았다. 장사꾼도 무시를 당하는 것이 조선 풍토였지만 여리꾼은 장사꾼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 인생들로 무뢰배나 건달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그들 처지였다. 여리꾼들은 전을 차리거나 내 돈으로 물건을 구입해 난전조차도 벌일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개 다였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시골에서 한양으로 흘러들어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마저 할 수 없게 되자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속창알머리조차 빼놓고 살아온 인생이라 경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건만 팔 수 있다면 애걸복걸은 기본이고 죽는 시늉조차 했다. 그러면서도 흥정할 때와는 딴판으로 흥정이 끝나면 태도를 바꿔 남남처럼 대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여리꾼은 신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사람, 거짓말을 달고 사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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