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가을은 야구다. 메이저리그(MLB), 그리고 코리안시리즈. MLB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단연 박찬호이다. 오래 전 박찬호 때문에 시름을 잊고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를 이어 지금은 류현진 선수가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팀(LA) 소속이다.

흔히 야구를 멘탈스포츠라고 한다.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받으면 되는데 무슨 멘탈이 중요할까 생각하겠지만, 야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방금 전까지 잘 던지던 투수가 볼넷이나 안타를 연달아 맞고는 흔들려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때 해설자가 흔히 하는 말이 ‘자신의 공을 믿어라’라는 말이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공을 어떻게 믿지?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지?

보통 믿음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듣거나 귀로 들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확인하지 않은 말과 정보는 잘 믿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가까운 관계의 사람일수록 잘 믿지 않는 성향이 크다고 한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의 말에 더 믿음이 생긴다. 함께한 시간이나 그동안 맺어온 관계를 고려했을 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왜 그런 것일까? 투수가 가을야구에서 뛴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 보다 더 많은 공을 오랜 기간 동안 던지고 연습했다는 것인데, 왜 자신의 공을 남들보다 더 믿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믿음은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시?’ 라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신에 대한 믿음은 더욱 그렇다. 가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망설인다. 결정한 후에도 계속 의심한다. 그것이 무의식속에서 고착돼 다른 사람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믿음(신뢰)이 없기 때문에 남도 믿지 못한다.

어린 시절 과잉보호나 억압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자신감이 낮다. 그런 아이들은 부모에게 믿음을 얻고자 자신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하며, 그래서 착하다는 말을 듣는다. 평소 얌전하고, 착하며,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다혈질적이고 활달하며 말이 많은 사람들보다 믿음이 약하다.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표현하고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의심한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거나 아무나 믿지 말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 남을 믿지 않아서 발생하는 낭패보다 믿어서 겪는 실패의 확률이 훨씬 적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믿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때 상대방도 진짜 믿음의 관계를 형성한다. 자녀들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데도 믿어주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이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자신의 공을 믿고 던져서 때론 안타를 맞기는 하겠지만, 볼넷보다는 낫고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 이번 주말에 류현진 선수의 공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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