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한마디]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과 주무관

 

공공성은 시대와 사회를 읽는 하나의 기준이다. 근대 이후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 온 공동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공공성이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규범으로 작동했다면, 현대의 공공성은 국가가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2016년 유엔 해비타트 Ⅲ의 새로운 도시 의제인 ‘City for All(모두를 위한 도시)’은 이런 흐름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우리에게도 ‘공공(익)’이라는 미명 하에 정부가 하는 사업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재산권은 물론이며 인권까지 박탈당한 시절이 있었다. 시민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 결과적으로 공공이 아닌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이익에 봉사하거나 또는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축적해 왔다. 도시재개발의 결과가 원주민의 재정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재개발 과정에서 추진위와 대책위의 지난한 싸움과 이로 인한 공동체의 파괴, 대기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 가장 큰 피해자는 지금 이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오래된 거주자·노인·세입자라는 것들 말이다. 

원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했던 과거의 경험은 시민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회단체와 발 빠른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시민참여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도시재생은 이제 국가의 핵심 정책이 됐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공청회 등의 형식적인 주민의견수렴 과정을 넘어 시민제안제도·시민정책단·시민위원회·시민참여예산제 등 사업 제안부터 의사결정, 예산 집행 및 평가까지 전 단계에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다양한 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시민들은 ‘시민참여’를 ‘시민주도’로, ‘결과의 공공성’을 ‘과정의 공공성’으로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공공성 개념을 재구성했고, 실현 주체로 성장했다. 재개발 피해자들은 도시재개발 구역 지정을 해제함과 동시에 원주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을 이끌어냈고, 많은 지역에서 재개발구역 해제의 결실을 거뒀다.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시민의 작은 촛불이 모여서 혁명을 이뤘다. 시민들은 언론이 가짜 뉴스를 생산한다거나 다수의 의견이 조장된 여론이거나 ‘소수’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과정의 공공성을 더 세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정에 ‘누가’ 참여하는가? 의사결정은 ‘합의’에 근거하는가? ‘누가’의 범주는 이제껏 그래왔듯 소위 공무원·전문가·시민단체·의원들을 넘어서야 한다. 장애인·어린이·노인·동성애자·노숙자와 같이 차별받고 고통 받는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누가’의 자리를 내어주는 ‘윤리적 공공성’으로서의 포용성, 포용 도시를 원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