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어른, 광통교 밖 장마당이나 안의 시전이나 정말 대단하네요.”

“그러게 말일세.”

일 년에도 필요할 때면 수시로 한양을 드나드는 윤왕구 객주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한양을 그것도 팔도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성한 운종가를 처음 보는 최풍원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우산을 파는 우산전, 조기·고등어·꽁치·미역·김·젓갈……을 파는 어물전, 말린 꿩고기를 파는 치계전, 팔도에서 올라온 무명 파는 면포전, 대국 비단을 파는 선전, 조선 비단인 명주 파는 면주전, 누룩 파는 은국전, 소금 파는 염상전, 사기 파는 사기전, 종이 파는 지전, 베 파는 저포전, 유기 파는 시저전, 철편·작도·솥, 같은 쇠붙이를 파는 철물전, 쌀을 파는 상미전과 하미전, 보리·밀·콩·조·수수 파는 잡곡전, 꿀 파는 청밀전, 과일과 마른 견과를 팔던 과물전,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잡화전, 담배통과 담뱃대를 파는 연죽전, 솜을 파는 면자전, 안경을 파는 안경방, 문방구를 파는 필방, 갓을 파는 갓전……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상전들이 즐비하고 상전마다 온갖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런 물산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한양에 사는 인총이 얼만데, 이 사람들 먹여 살리려면 팔도 방방곡곡 안 올라오는 물산들이 있겠는가?”

역시 한양은 한양이었다. 조선의 도성답게 없는 물건이 없고 사람들 또한 구름처럼 많았다. 시전거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일행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최풍원은 윤왕구 객주의 뒤를 쫓으랴 시전마다 쌓인 처음 보는 물건들도 살피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최풍원은 육전거리 양편으로 늘르리하게 뻗힌 시전과 거기에 진열되어있는 다양하고 화려한 물건들 구경에 넋이 빠져버렸다. 한양에 가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최풍원은 윤 객주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뒤를 쫓았다.

“객주어른, 저 상전 앞에 어리대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요?”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를 따라가며 물었다.

“저기 저 사람들 말인가?”

그러고 보니 상전 앞마다 그런 사람들이 어정거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까부터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꾸 치근덕대는데 뭐하는 사람인가요?”

“여리꾼이네!”

“여리꾼도 장사꾼인가요?”

“글쎄다 물건을 파니 장사꾼일 수도 있고, 헌데 자기 물건을 파는 게 아니니 아닐 수도 있고, 뭐라 해야 할라나…….”

윤왕구 객주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기 물건도 아닌 것을 왜 판다나요?”

“굳이 얘기하자면 쇠시장에 거간꾼이라고나 할까. 한양에서나 볼 수 있는 장에서 입으로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지.”

윤왕구 객주 말처럼 그들은 여리꾼이었다.

여리꾼은 일종의 호객꾼이었다. 이들은 상인과 손님 사이에서 흥정을 붙여주고 거래가 성사되면 남는 이익금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어느 한 곳의 상전에 매여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들은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물건이 있는 어떤 상전에라도 소개시켜주고 구전을 먹는 자유 상인이었다. 이들은 대개 육전거리의 시전에서 활동하였는데, 이는 시전의 장사방법이나 형태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지금이야 시전과 난전의 구분이 사라진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초기 시전은 직접 물건을 진열해놓고 장꾼들을 대상으로 직접 판 것이 아니라, 대궐이나 관아에 공납을 하고 남은 잉여물을 받아 그것을 암암리에 거래했다.

그러다보니 상인과 장꾼들 사이에 서로의 정보를 알려주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 연결을 해주는 자가 여리꾼이었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두 사람을 연결해주고 구전을 먹는 것은 같지만 지금의 여리꾼은 초기와는 좀 달랐다. 시전의 모습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나라로부터 허가받은 시전상인들만 장사를 할 수 있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전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번듯하고 큰 시전도 많았지만 물건을 진열해놓으면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도 없는 비좁은 전도 많았다. 그런 상전들이 수 천 개가 오밀조밀 붙어있었다. 게다가 그 전방에서 무슨 물건을 팔고 있는지 알릴 수 있는 표식도 없었다. 또 가격이 얼마인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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