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확대되고 고성이 오고갔다. 그 후 그들은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갈등은 커져갔고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생각 끝에 한쪽을 설득하여 화해를 권유했다. 참기를 결심한 값진 희생에 화해를 했고 반면 상대는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지 못했던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자칫 서로가 등 돌리는 사태까지 발생할 뻔했던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농막 진입로에 심어놓은 해바라기가 예쁘게 꽃을 피웠다. 길가에 줄을 맞춰 피어있어 더욱 아름답다. 힘들었던 여름을 이겨내고 높디높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게 자라 파란 하늘에 노란 선을 그어놓은 듯 선명하다. 그 주변을 고추잠자리가 맴돈다.

해는 돌고 돈다. 해바라기는 신이 나서 숭배하는 신처럼 간절히 바라보며 따라 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곳에 피어있는 해바라기들은 한결같이 해를 바라보지 않고 등지고 있다. 왜 그럴까. 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 여름은 아주 특별했다. 최장의 폭염 기록을 세우며 온 대지를 바짝 말려 버렸다. 거북이등처럼 갈라진 메마른 땅에서 살짝 내려준 아침이슬로 생명을 연연하며 근근이 살아온 그들이다. 내리쬐는 해를 원망하며 간간히 떠다주는 물로 목을 적셔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갈증만 더욱 심화되었다. 죽었다 깨어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겨우겨우 명을 유지해 왔다. 이에 질려버린 탓일까.

여름 내내 그를 괴롭혔던 해에게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밭에 도착할 때마다 해바라기는 거의 아사 일보 직전이었다. 물을 떠다주면 겨우 살아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며칠 있다 가보면 잎이 말라있고 어깨가 축 처져있다. 물을 주면 고개를 들고 어깨를 추켜세운다. 하루하루가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니 해를 좋아하겠는가.  해바라기 마음속엔 깊은 골이 파여 있을 것이다. 나라해도 눈조차 마주치기 싫었을 것이다.

그랬던 해바라기가 당당히 꽃을 피웠다. 장하다. 보란 듯이 꽃을 피우고 해는 바라보지도 않는다. 염증을 느꼈나 보다. 지난일은 잊고 그래도 꽃을 피우는데 역할을 해준 해에게 고마워해야할 텐데 전혀 ‘아니 올시다’이다. 바라보지를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음이 누그러들면 화해를 시켜 보아야겠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물을 주어 소생시킨 나의 화해 권유를 받아들여 해바라기 본연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누구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그쪽 방향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 방향으로 가기조차 꺼려한다. 그만큼 질렸다는 뜻이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던 장병들은 논산 방향으로 소변도 보기 싫어했다고 한다.

해바라기 꽃도 그래서일까 해를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성격 탓일 게다. 고쳐보려 노력해 보았지만 어렵다. 다가가 손잡아야 하는데 다가서지 못하고 등을 돌린다. 돌아서 안아보려 하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질 못한다. 나는 늘 혼자인  듯 모두에게 어울리고 있다. 과연 언제쯤 해를 바라보고 해를 바라보며 함께 돌고 있게 될까.

해바라기는 해와 소통하며 살기를 빌고 있을 것이다. 노란 꽃을 닮은 달과 소통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빨간색의 해와 놀아야 노란색이 돋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아야 씨가 영근다. 많은 사람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나에게 먼저 눈길을 주어 다가설 수 있도록 했듯이, 자연도 등 돌리고 외면하는 해바라기에게 알게 모르게 빛을 주어 씨를 영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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