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면 집 안팎으로 솥을 걸고 떡이며, 전 같은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아들손자며느리 다모여서 온 방이 그득했다. 새벽부터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일가친척이 모였고 방과 마루도 모자라 마당에 멍석을 깔아야 했다. 농촌이 붕괴하고 하나둘 도시로 떠나면서 예전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4촌 형제간 왕래도 드문 시대이니 명절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 먹은 소리 일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예전이 그립기도 하다. 시골집에서 지내던 제사를 맏아들이 가져오면서 귀성길이 짧아졌다. 명절 당일 5촌 당숙, 4촌 형제가 모여 차례를 지내면 끝이다. 새벽부터 몇 집을 거쳐 늦은 점심을 먹어야 끝이 났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도 간소해졌다. 형제 많은 집이지만, 모두 나름의 일가를 이뤘으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일가가 모이는 명절도 예전 같지 않으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더욱이 어머니가 오랜 병실 생활을 하는 터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엄마와 고향으로 연결된 형제들도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나의 기분 탓일까.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80년대 <전원일기>나 ,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휴먼드라마에서부터 2000년대 <바람난 가족>, <가족의 탄생>과 같은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변천사를 접할 수 있었다. <전원일기> 같은 농촌드라마나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도시의 생활상을 담은 가족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는 가족이라는 기존의 가치 기준에서 일탈한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바람난 가족>의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랄 것도 없이 가족 구성원의 테두리에 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다. 모두가 바람이 났다.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삶에서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이 영화의 배경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족의 탄생> 역시 기존의 가치 기준을 벗어나는 영화이다. 몇 년이나 소식 없던 동생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혈연으로 이어진 남매와 불현듯 구성원이 된 타인, 이들은 해체되는 가족이라는 구성단위가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보여준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에서 가족은 기존의 가치질서에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주는 주제는 불안한 현실에 따듯한 온기를 주기도 한다.

긴 연휴, 짧은 명절을 보내고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세계에서 이혼율 상위권인 나라가 된 지 오래되었고 비혼자가 증가하고 출산율도 저조하다. 교과서에 배운 핵가족화가 현실이 되고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더 가깝다. 흔히들 부모 살아계실 때 형제자매지 나중엔 다 남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흘려듣지 못하는 내가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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