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화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아버지께서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어제 너네랑 먹은 식당이 어디였었지?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라고 물으셨고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아버지 나이에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자식들을 위해 보건소에 꼭 가서 치매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지만 그러다 혹시 정말 치매라고 그러면 어쩌나 싶어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치매’란 단어가 주는 어감마저도 참 두렵다. 비단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나답게 늙고 싶지만 혹여나 하는 생각에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치매 환자를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본 일본의 한 PD의 기획 결과물을 엮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NHK 방송국 PD인 저자 오구니 시로는 어쩌다 취재를 가게 된 간병 시설에서 예정된 메뉴가 아닌 엉뚱한 음식을 대접받은 경험을 한 후, 치매 어르신들로 스태프를 꾸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그리고 2017년 7월 3일과 4일 단 이틀간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 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했다.

이 책에는 그 이틀간을 위해 준비해 온 시간들,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이틀간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메뉴도 단순화하고, 식탁 위에도 번호표를 크게 써 붙여 놓았지만 노인들은 실수 연발이다. 주문을 받으러 갔다 내가 여길 왜 왔지 손님에게 물어보고, 아무리 식탁에 큰 번호표를 붙여놓아도 음식 배달은 사고 연속이다. 이틀간 이 요리점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설문을 부탁했는데 60퍼센트 이상의 테이블에서 주문 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90퍼센트는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밝혔다. 손님들은 잘못 온 음식을 서로 바꿔 먹었고, 음식 대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소정을 월급을 받은 어르신들 역시 뿌듯해했다. 오랜만에 일 한 대가로 번 돈이 기분 좋았던 할머니는 돈을 받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가 과자를 사기도 했고, 오랫동안 피아노를 쳐왔지만 치매를 앓고 난 뒤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던 할머니는 요리점에서 연주를 끝낸 뒤 큰 박수세례를 받기도 했다. 모두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쓸모를 발견했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작은 프로젝트가 치매에 대한 모든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다. 여전히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다. 혹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한다.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를 미소로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가득 찬 사회를 말이다. 그리하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