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시세야 거기가 거기 아닐까요? 별 차이가 없다면 삼개 여각에 넘기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만…….”

최풍원은 삼개 여각 마씨 형제의 호의를 무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단돈 한 푼이 남는다 해도 수십 리 길 발품을 파는 게 장사꾼일세. 그런데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일을 그르친다면 그건 장사꾼 자격이 없네!”

“객주어른, 신의가 먼저 아닐런지요?”

“신의가 중허지! 그러나 장사꾼이라면 거래를 하면서 신의는 내려놓게. 신의는 거래를 끝내고 해도 늦지 않네. 거래는 서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것이지 신의를 생각해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네!”

윤왕구 객주가 잘라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풍원이 대답은 그렇게 해놓고도 찜찜한 마음은 영 가시지를 않았다. 

“왜 마 선주 형제 대할 생각을 하니 뒤가 켕기는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최풍원은 말없이 그거 걷기만 했다. 윤왕구 객주에게 속내를 들켜버린  것도 그러했지만, 광통교가 가까워지며 청계천과 종로 일대로 펼쳐진 시전행랑과 난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저기 앞에 보이는 게 광통교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이 청계천이라네.”

윤왕구 객주가 앞에 나타난 큰 다리를 가리켰다.

“저것들이 모두 상전들인가요?”

최풍원은 눈앞에 나타난 웅장하고 치장된 돌다리도 돌다리였지만 그 주변에 밀집된 집들이 먼저 눈에 뜨였다.

“저 다리가 팔도에서 그중 크고 좋다는 광통교도, 그 주변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행랑들이 시전들이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삼각봉이 인왕산이고, 그 아래 대궐이 있고, 도성 앞으로가 육전이다.”

윤왕구 객주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어가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두 사람은 조선팔도에서 가장 크다는 시전으로 들어섰다. 삼개나루 장터가 구멍 숭숭 뚫린 거친 삼베옷이라면, 칠패 상전은 고운 삼베옷이었고, 시전 행랑들은 올 고운 명주옷이었다. 삼개 장터와 칠패 상전, 그리고 시전 행랑들의 모습이 그리도 차이가 났다. 같은 한양 땅이고, 그다지 멀지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닌데도 장마다 취급하는 물건에 따라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대궐이 지척에 있어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조차 다르게 보였다. 광통교 주변에는 도성의 모든 관곡을 저장하는 창고도 이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곡물들은 용산나루로 집산되었다. 그곳에서 하역된 곡물들은 수레를 이용해 광통교 주변에 모여 있는 관곡창고로 옮겨졌다. 이 관곡들은 대궐 안에서도 쓰였지만 높은 고관대작에서부터 창고를 지키는 말단 관리들의 급료로 요미가 지급되었다. 그러다보니 거리에는 곡물을 옮기는 수레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았다. 관곡창고에 붙어 먹고사는 사람들만 해도 창고지기에서부터 막일꾼까지 웬만한 고을 인총보다 많았다. 이들에게 급료가 나오는 날이면 시전 일대는 물론 칠패장까지 쌀을 가지고 나와 피륙이나 어물이나 갖가지 생필품을 바꾸는 사람들이 천시를 이뤘다. 그만큼 광통교 주변 시전은 일 년 내내 사람들이 들끓는 한양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없는 것이 없는 도깨비 장터였다.

최풍원은 즐비하게 늘어진 상전에 진열된 물목을 보고만 있어도 속이 흡족했다. 짚신·나막신·노파리·설피·당혜·태사혜·수혜자를 파는 신발전, 갓·복건·유건·백립·사모·초립·방갓·굴건을 모자전, 참빗·어레빗·반달빗·용잠·화잠·나비잠·호도잠·면경·쪽집게 같은 부인들의 머리 장식을 파는 전, 부인들이 선호하는 노리개 삼작·투호 삼작·향랑 삼작과 온갖 가락지를 파는 패물전, 물감과 화장구를 파는 전, 원반·소반·책상반·해주반·번상·호족반·개다리소반을 파는 상전, 바구니·광우리·채반·용수·도시락·고리·조리를 파는 죽세전, 사방등·용등·마늘등·수박등·북등·조족등·촛대·등잔·양각등을 파는 등전, 합죽선·백우선·오엽선·윤선·꼽장선·미선·태극선을 파는 부채전, 가마솥·노구솥·절구·번철·삼바리를 파는 생수철전, 놋그릇·주발·신선로·촛대·향로를 파는 유기전, 독·단지·시루·소래기·방구리·자배기·동이·뚝배기·약탕기·접시·사기를 파는 옹기전, 담배 잎을 파는 연초전, 돗자리·갈대자리·삿자리·자리·발을 파는 자리전, 호미·낫·톱·괭이·곡괭이·쇠스랑·가래·삽을 파는 농기구전, 규·구·준·먹통·대패·자귀·줄긋기·송곳·줄·장도리·달구·끌을 파는 공구전, 칠·목기·장롱·절구·방망이·홍두깨를 파는 목물전, 생어물전과 건어물전, 곡물 가루를 치는 솔체전, 인절미·쑥개떡·시루떡을 파는 떡전, 콩엿·호박엿·생강엿·계피엿을 파는 엿전, 솜 파는 전, 채소전, 과실전, 가축전, 잡화전, 도자전, 병풍전, 약전 등 헤아릴 수도 없는 전들이 장마당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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