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영업계 최악의 한해가 돼버렸다. 연초부터 조류독감, 광우병 파동으로 몸살을 치렀다. 2월에는 불황이 반영된 탓인지 1천원 만두, 오뎅 등의 길거리 음식이 상승세를 누리다가 불량만두피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소비자의 소비수준은 건강을 중시하는 풍조가 지속됐다. 연초부터 ‘웰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더니 한해 내내 사그러들 줄 몰랐다.

상반기부터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자영업과 재래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타이틀로 연일 보도됐으며, 지역마다 특성을 달리하지만 그 여파로 빈 점포가 속출하고 권리금의 하향세가 지속됐다. 여름을 맞이하면서 외식업종에서는 매운맛이 인기를 누렸다. 경제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맛을 즐기는 와중에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하반기에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창업강좌나 교육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포화상태로 대변되는 내수시장에서 창업은 곧 실패라는 이야기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영업 창업은 그동안 20%대의 성공율에 머물러 왔었는데 10%대의 성공율로 내려 앉았다. 지난해 생긴 신조어인 사오정, 삼팔선 등의 단어와 함께 실직시대는 지속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의 길이 막혀 이십대들의 태반이 실직자라는 뜻인 이태백시대를 맞이한 한해이기도 하다.
내수부진으로 사업여건은 악화됐지만, 오히려 창업자는 증가하는 현상으로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발생한 한해이기도 하다. 400만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양산과 가구당 평균 가계부채 3천원 돌파는 내수시장의 부진을 반전시키는데 걸림돌이 됐다. 정부에서도 신용불량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갚을 여력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인 듯 했다. 외환위기 이후 통계청발표의 6년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서민가계가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돈 냄새를 귀신처럼 잘 맡아 돈 벌고 불리는데 입신의 경지에 들어선 일부 부자들이 돈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상이다. 돈을 버는 구조인 사업을 현재 하고 있는 부자들도 사업을 정리하거나, 사업정리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부자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가진 돈을 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중단한 상태라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인 불황과 사회적인 여건이 이들의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만든 결과다. 부자로 대변되는 이들의 소비는 국내가 아닌 해외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내수시장의 현주소는 돈을 벌기 위한 환경도 아니고 돈을 쓸 환경도 아니라는 것이 부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반기에는 올림픽이 경기를 회복시켜 주려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그나마도 물거품이 돼 버렸다. 오히려 추석이후부터 매출이 30%가량 줄어들었고 그동안 비교적 타격을 덜 받았던 외식업체들도 솥단지를 내던지며 시위를 벌이는 사건도 생겼다. 내수의 위축을 가져온 정책 중 한가지가 여성성매매금지법이다. 물론 인권옹호차원에서 필연적인 일이긴 하지만 시기선택을 잘못했다는 것이 자영업계의 목소리다. 주로 서민들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집창촌이나 호화룸살롱업종은 물론이고 그 주변업종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예비창업자들도 인터넷의 생활화로 인해 정보에 눈이 밝아졌고, 소비자들의 소비여력은 부족하지만 소비수준 만큼은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장사해 먹기가 그만큼 까다로워졌다. “그래도 역시 장사가 어둡다”는 속설이 무너져 버린 한해였다.

정 상 옥 <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지원센터 상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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