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칠패장에 모인 물건들은 서소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칠패장이 생겨나던 초창기만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번성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성의 서소문 밖에 처음으로 노점을 시작한 사람들은 한양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농촌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살길을 찾아 도성으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맨 몸둥아리로 타관에 온 사람들이 죽지 않고 벌어먹고 살려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등짐을 지거나 품팔이를 했다. 육전거리에 있는 시전상인들의 물산들을 용산이나 삼개나루, 그리고 서강에서부터 날라다주고 품삯을 받았다. 품삯으로 받는 것들은 주로 내륙에서 올라오는 곡물이나 서해바다에서 올라오는 어물이었다. 그들은 품삯으로 받은 곡물이나 어물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장사꾼과 장꿈들 수효가 늘어나자 난전이 생겨나고 거래량이 불어나 제법 규모를 가진 장사꾼도 생겨났다.

이때만 해도 일반 백성이 곡물이나 어물 같은 물산들은 사사로이 팔고살 수 없었다. 이런 물산들을 팔고살 수 있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허가를 받은 육전거리의 시전상인들 뿐이었다. 칠패상인들은 처음에는 시전상인들의 중개인 노릇을 하며 구전을 얻어먹으며 살았다. 그렇게 얻은 물산으로 시작한 장사가 커지자 시전상인의 중개인 노릇을 하며 익혀둔 안면으로 나루터에 나가 민간상인들로부터 물산들을 직접 사들이기 시작했다.

칠패상인들은 이렇게 구입한 물산들을 시중에 들여가 도성 백성들에게 팔아 점점 상권을 키워나갔다. 그것도 이미 예전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였다.

지금의 칠패장은 시전 못지않은 큰 시장이 되었다. 칠패장의 장사꾼들도 시전상인 못지않은 부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나 칠패장의 어물전은 시전 상인들을 능가한지 이미 오래전이었다. 육전거리 어물전 시전상인의 심부름이나 중개인 노릇에서 벗어나 한양의 각 나루터로 사람을 보내 어물을 몇 백 바리씩 매점하여 칠패장으로 반입해 들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칠패상인들은 시전상인들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물산들을 구입하기 위해 직접 바닷가 어촌으로 내려가 직접 구매를 하거나 지방에서 올라온 물건을 중간에서 매점매석하여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했다.

그리고는 이 어물들을 중개업자인 중도아들을 끌어들여 각지로 더·산매했다. 이렇게 되자 칠패장 상인들은 시전상인들을 누르고 한양의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거상으로 성장했다. 이미 칠패장은 팔도 최대의 어물 도매시장으로 발전해 거래되는 물량이 시전의 열 배도 넘었다. 그러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자본력과 상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칠패장은 예전의 비린내 풍기던 어물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 밖에 사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도성민들이나 관리들까지도 칠패장에 나와 어물이나 채소나 옷감을 사갈 정도였다. 일단 칠패장에 모인 물건들은 대부분 서소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파루종이 울리면 이때부터 사대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통행이 시작되는 데, 이에 앞서 열리는 칠패장의 새벽은 그 혼잡함이 대단했다.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이 칠패장터로 들어섰다. 칠패장에는 상전마다 곡식 섬과  어물들이 산같이 쌓여있었다. 이런 어물들을 실어 나르고 팔고 사느라 우마와 사람들이 오가니 길거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들에게 치인다는 말이 칠패장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부딪쳐 제대로 길을 걸을수 없을 정도로 번잡했다. 장사는 사람들을 뜯어먹고 사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법석대니 무슨 장사를 해도 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필주는 그곳에서 상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필주는 칠패장의 터줏대감이었다. 이미 그 선조부 때부터 부친에 이어 삼대가 칠패장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한양의 나루터를 닥치는 대로 오가며 등짐장사로 시작해 발판을 삼고 부친은 어물전으로 장사를 굳히고, 유필주는 두 분을 언덕삼아 지금의 상전으로 발전시켰다.

유필주가 거상이 된 것은 두 분의 도움이 컸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유필주가 거상이 된 것은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잘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필주 수완이 한몫을 했다. 유필주는 경강상인의 선두주자 격이었다. 그가 오늘날 칠패장에서 내로라하는 거상이 된 것은 사선을 이용해 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각지의 물산들을 매점매석하며 폭리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장사꾼은 뱃사람들이 싣고 오는 물건들을 중간에서 받아 파는 것을 전부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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