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2004년을 되돌아본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 한 해 동안 가장 이목을 집중 시켰던 사건의 순위를 나름대로 정하느라 각 시사지들의 지면이 어지럽다. 그 중에서 가장 세인들의 비웃음을 샀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하게 매스컴의 톱을 장식한 것은 아니나 이런저런 사건 사고 중 가장 우습고 황당했던 일을 꼽는다면 상당수의 필부들이 ‘애필(愛必)소동’을 들지 않을까 싶다.

애필은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공모했다가 철회한 ‘콘돔’의 새 이름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기관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 콘돔 개명 해프닝은 결국 협회 측에 망신살만 안겨 주고 흐지부지 되어 버렸지만 시작단계에서의 의욕은 실로 거국적인 것이었다.

공모된 작품 수만 1만9천296건에 이르렀다는데 이들 중 1차 심사에서 25개 후보작이 추려진 후 소위 전문가로 구성됐다는 심사위원단에 의해 5개 후보작이 가려졌다.

‘애필’네티즌 반발 사용 중단

연맹은 이들 5개의 후보작을 놓고 성별, 연령대별로 표본 선정한 450명의 시민에게 설문을 돌렸는데, 그 결과 즐거운 사랑을 의미한다는 ‘라오네’, 믿음을 주는 상대라는 ‘미드미’ 등의 경쟁 후보작을 물리치고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은 ‘애필(愛必)’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애필’이라는 이름이 발음상, 의미상, 단어구조상 매우 세련되고 참신했던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의기양양하게 선정작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은 이 이름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큰 곤욕을 치르게 될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선 선정 발표가 나가자마자 “내 이름이 ‘애필‘인데 앞으로 ‘콘돔’으로 불리게 생겼다”는 전국의 애필씨들로부터 분노의 화살을 맞게 됐다. 자신의 이름이 자고 일어나니 ‘콘돔’으로 바뀌게 생겼는데 하긴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점잖게 항의로만 끝난 애필씨들의 인품이 한국에이즈퇴치연맹처럼 앞 뒤 생각 없는 것이었다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비난 여론에 밀린 연맹은 콘돔개명을 취소했지만 콘돔의 한국식 개명을 추진했다가 철회한 애필(愛必) 해프닝이 전 세계인에게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로이터통신은 서울발 기사를 통해 애필 해프닝을 전 세계에 타전했고 사랑할 때 꼭 필요하다는 뜻의 콘돔의 새 이름이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반발 때문에 결국 없었던 일로 되었다는 경위를 상세히 보도했다.

애필 해프닝 뉴스가 로이터 네트워크를 탄 후 미국의 주요 일간지는 물론 호주와 영국,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디펜던트 온라인’ 등에서도 이 뉴스는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는데 특히 인도의 ‘더 텔레그라프’는 ‘콘돔 대혼란’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려 독자들을 포복절도케 했다.

급기야 미국 야후의 ‘황당 뉴스’ 톱기사로까지 등장해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콘돔 개명소동은 결국 한국의 공익 기관을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 되고 말았다.

공익기관 법석 조롱거리돼

여기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기사에 리플을 단 미국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많은 사람들이 콘돔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려다 실패한 기관의 황당한 발상에 폭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한국인의 콘돔 사용률이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우려의 생각을 보였다.

쓸데없이 콘돔의 새 이름이나 공모하며 얼마나 발음상, 의미상, 단어구조상 세련되고 참신한 이름인지를 선전하는 일이 에이즈퇴치연맹의 업무가 아니라는 일침이 외국인들의 말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콘돔이름 공모를 위해 작명가에다 법률자문을 위한 변호사까지 동원하며 헛돈을 뿌리는 법석을 떨기 이전에 전 국민에게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홍보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본 업무임을 과연 연맹은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애필’이라는 이름이 콘돔이 갖는 부정적 어감을 희석시켜 콘돔 사용을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는 에이즈퇴치연맹의 확신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류 경 희  < 논 설 위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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