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물산들은 또 뭘 싣고 왔소이까?”

“간절이 생선에, 건어물이오.”

“그것들은 어떻게 처분할 생각이오?”

“소금은 전부 도가에서 가져갈 거고, 다른 물건들은 금이 맞으면 여각에 넘길 생각이오. 장사꾼이시오, 왜 자꾸 금은 묻는 거요?”

“실은 나도 물건을 가지고 온 장사꾼인데, 시세 좀 알아보느라 그러는 것이오.”

최풍원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장사꾼이라면서 강경도 모른단 말이오?”

어부가 피식거리며 최풍원을 얕보았다.

최풍원이 비웃음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강경은 평양·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장이라 할 정도로 큰 장이었다. 마포 같은 한양의 장들은 팔도에서 생산된 물산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지만, 강경은 달랐다. 강경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자리 잡고 있어 육지와 바다에서 생산되는 산물들이 모두 풍부한 곳이었다. 금강 하류의 강경에서 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홍주·부여·공주·연기·부강까지 물길이 연결되었고, 더 멀리는 충청도의 청주·호남의 전주까지 깊은 내륙지역까지도 상권의 배후지로 삼고 있는 물산 유통의 요충지가 강경이었다. 강을 따라 그 연안 일대는 비옥한 평야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져있어 육지에서 생산되는 온갖 곡물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서해바다와 연해있는 강경포구는 호남의 바닷가 어장과 수많은 섬지역에서 잡아 올리는 해산물들이 모여들어 원산·마산과 함께 조선 삼대 수산물 집산지였다. 그중에서도 조기 생산이 많아 염장한 조기가 포구에는 짚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렇게 염장된 어물들은 팔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강경은 마포처럼 소비될 물건들이 모여드는 곳이 아니라 풍부하게 생산된 곡물과 어물들이 쌓이는 곳이라 물량도 엄청났지만, 산지인 까닭으로 값도 매우 저렴하였다. 장사꾼이라면 그런 강경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최풍원은 강경이란 이름이 생소했다. 최풍원이 행상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기반을 닦은 지도 꽤 여러 해가 지났다. 그동안 장사를 하며 어디서 누군가엔가 강경이란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 봤을 것이었다. 그러나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귓등으로 흘려 들었을 것이었다. 최풍원이 이제껏 장사를 한 것은 북진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과 강 상류 영월, 하류의 충주, 근자에 들어 경상도 풍기 장사꾼들과 교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충주에서 물건을 떼다 팔거나 청풍 인근의 물건을 모아 맞바꾸기를 하며 장사를 해온 터라 물산의 종류도 간단했고, 거래도 단순했다. 한양 길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양 구경도 이제 시작이지만, 한양의 번성함에 머리가 어지럽고 생각이 복잡하기만 했다. 한양의 여러 장 중 삼개장만 보고도 기가 죽을 정도였다. 알고 있던 것도 떠오르지 않아 모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란했다.

“저 굴비는 얼마나 가오?”

최풍원이 어부의 배에 있는 마른 조기를 가리켰다.

“저걸 다 사시려오?”

어부는 이제 대놓고 최풍원을 업신여겼다.

어부의 배에는 잘 갈무리되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통통한 굴비 더미가 잔뜩 쌓여 있었다. 청풍 도가 같은 곳에서도 저런 굴비 보기가 힘들었다. 기껏 있어봐야 짤고 짤아 북어처럼 변한 굴비인데다, 그런 것조차 몇 줄 걸려 있지도 않았다.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런 굴비가 곡식 섬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니 최풍원은 마치 딴 세상에 서있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장석이 형과 살미장 어물전에서 만났던 노파가 떠올랐다. 그 때 노파는 나물처럼 엮어 매달아 놓은 조기 한 뭇에 두 냥을 달라고 했었다. 두 냥이면 이백 마리였다. 노파는 스무 배 장사였다. 저 정도 물량의 조기를 청풍으로 가지고 간다면 쌀 수 백 가마도 넘을 것 같았다.

“한 뭇에 일 전 주시오!”

“한 뭇에 일 전 이라고요?”

최풍원은 어부의 말에 뒷머리가 띵했다.

“조기가 한 뭇이면 열 마리였다. 한 뭇에 일전이라면 한 마리에는 한 푼이었다. 한 마리에 한 푼이면 거저나 다름없었다. 길을 가다 돈을 주웠다 해도 이처럼 횡재를 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청풍 인근에서 팔리는 조기는 한 마리에 최소한 싼 것이라 해도 닷 푼이 넘었다. 그것도 아주 비루먹은 물건이었다. 그에 비하면 어부가 말하는 굴비는 상상품으로 한 마리에 일 전을 준다 해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는 좋은 물건이었다.

“어르신, 저 조기를 사가지고 가면 횡재 하겠습니다!”

“망하지는 않겠는가?”

“망하다니요?”

최풍원은 윤왕구 객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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