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아침 문득 나의 빈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며칠 전 필자가 존경하는 어떤 한 분이 세상에서 자리를 비우셨다. 작년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었는데, 요즘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60세가 채 되지도 않은 나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빈소를 찾아가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앞에서 추도묵념을 하는데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가족의 슬픔에 비할까마는 그분과의 많은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분과의 첫 만남은 꼭 10년 전 일이다. 당시 필자는 직장에서의 일과 술, 운동의 중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던 때였다. 6살과 4살의 두 아이를 키우던 아내는 가정은 버려두고 밖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남편을 지켜보다 못해 큰 결심을 했는데, 그것은 장인어른, 필자, 그리고 필자의 술친구, 이렇게 3명을 두란노아버지학교에 등록시키는 것이었다. 10년 전 두란노아버지학교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당시 필자의 가족들은 종교적 믿음이 없었는데, 아버지학교에서 5주간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분은 아버지학교의 충북지역본부장을 맡고 계셨는데, 종교적 믿음이 없고, 술과 일중독에 빠져있었으며, 장인어른과 함께 교육을 받으러 온 필자를 눈여겨 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그 분이 섬기는 교회에 등록하게 됐고,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그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기존의 삶에서 만나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고 있지만, 그분처럼 믿음이 충실하고, 선하며, 낮은 곳에 처할 줄 알면서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본부장이라는 직분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일 먼저 나와서 자리를 정돈하고, 오는 이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하며, 행사가 끝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뒷정리를 하셨다.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학교를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궂은일에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분은 종교적 믿음이 부족했던 필자에게 일대일 교육도 직접 맡아주셨고, 필자 가족과의 인연도 커졌다. 필자의 아내도 그분의 아내와 인연을 쌓아갔고, 그렇게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부부학교를 섬기면서 더 친밀해 졌다. 보통의 관계에서는 친밀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가끔은 실망도 하고, 갈등의 시간을 겪기도 하는데 그분은 그렇지 않았다. 늘 한결같고, 친절하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필자의 어린 시절 상처가 만든 편견도 그분을 통해서 깨지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에 폐암 3기의 검진결과를 받았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다. 울면서 그 소식을 전하는 아내의 마음도 필자와 같았다. 그 이후로 치료를 잘 받으면서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소천하신 것이다. 빈소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나의 빈자리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빨리 부르신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너무도 수고스러웠던 삶을 벗고 이젠 충분하니 하나님 곁에서 평안을 누리라는 뜻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아침, 수고하고 애쓰신 그분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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