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한양은 대단하구먼!”

윤왕구 객주가 삼개나루의 변한 모습에 감탄을 했다.

“한양에 처음 온 사람처럼 왜 그러는가?”

“삼개는 한 삼년만인가 싶으이.”

“삼년 전하고는 천지개벽을 했지. 하기야 삼개만 천지개벽을 했겠는가? 한양 전체가 천지개벽을 했고, 사람들 생각도 그때와는 천지 차이지.”

“그건 또 뭔 소린가?”

“지금은 돈이 최고인 세상이라네. 양반도 벼슬도 소용없어. 양반을 겁내는 것도 예전 일이여. 개똥밭에서 났어도 돈이 있으면 그놈이 양반이여! 요샌 그런 세상이 됐어!”

그런 세태는 비단 한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선 팔도가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양반 말이라면 상놈은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던 것은 옛말이 되었다. 양반이 양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양반이 양반 노릇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양반이 양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상놈보다도 못한 짓거리를 하니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양반이 돈 있는 부자나 장사꾼과 결탁하여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짓거리를 일삼으니, 눈앞에서는 굽실거려도 등 뒤에서는 주먹질하기가 일쑤였다.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건 그래. 내가 처음 행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양반집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 장사꾼은 용 됐구먼!”

윤왕구 객주가 예전 생각을 하며 눈을 지긋하게 감았다.

“요샌 여기 삼개에서 여각을 하는 궐내 벼슬아치들도 여럿이여. 여각뿐 인줄 알어. 어물전 도가를 하는 대작도 여럿이여!”

“벼슬아치에 고관대작들이 어물전 도가까지 하다니 세상 망조구먼!”

“어디 어물전 도가뿐이던가? 새우젓 도가에 젓갈가지 돈 되는 일이라면 개코처럼 냄새 맡고 쇠파리처럼 달려드는구만!”

“양반들이 염치도 버렸구먼!”

“염치? 돈이 양반이라니까.”

“그래, 그 양반들이 전에 나와 장사를 하는가?”

“썩어도 준친데, 그 양반들이 비린내 나는 생선들을 만지기나 하는가. 비린내를 맡는 것은 아랫것들이고, 그들은 성안 대궐 같은 집안에 들어앉아 장죽만 빨며 장사를 하지. 그래도 한 해에 수만 냥은 넉넉하게 벌 걸?”

“하기야 대궐에 들어가는 물목만 잡아도 그 돈이 얼마이겠는가.”

“대궐에 들어가는 물목은 대감들 같은 큰 도둑이 직접 시전상인을 찍어주고 돈을 먹고, 도가들은 그 밑에 것들이 해먹는 거지.”

“장사꾼들은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질 새도 없이 돌아쳐야 겨우 밥을 먹는데, 고관대작들은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버는구먼!”

“그러니까 도둑질을 하더라도 큰 도둑질을 해야 도둑 소리도 안 듣고 큰소리치는 법이여!”

“우리도 그런 고고한 장사나 해봅시다!”

“그런 장사는 아무나 하는가? 타고나길 불상놈으로 태어나 팔자가 이 모양인걸 무슨 수로 그런 큰도둑이 될 수 있겠는가? 허망한 꿈꾸지 말고 정신줄이나 챙기게!”

마덕필 선주가 배에서 땅으로 내려서며 윤왕구 객주에게 말했다.

“한양에 오니 간이 부었나 보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배에 남은 다른 짐은 어찌 할텐가? 우리 형님에게 넘길 텐가, 아니면 다른 장사꾼을 알아볼 텐가? 우리 배는 사흘 뒤에 영월 맏밭으로 가야하니 알아보려면 서둘러 알아보게!”

“최 대주, 어떻게 하겠는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객주어른 의향은……,”

최풍원은 어제의 일이 떠올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사꾼이 제 물건에 애착 없이 무슨 장사를 하겠느냐는 윤왕구 객주의 질도 질타였지만, 한양 행보가 처음인 최풍원은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했다.

최풍원이 지금까지 북진본방을 중심으로 해온 장사는 아주 단순한 상거래였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구해다 주거나, 임방을 통해 거둬들인 산물들을 모아 충주 상전에 맡기고 주는 대금을 받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직접 장사를 하기 보다는 충주 상전에 물산을 넘겨주기 위해 인근을 돌며 모으는 수집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지고 온 물건을 직접 처분해보라고 하니 최풍원으로서는 달도 없는 컴컴한 산길을 가는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그것도 언간한 고을도 아니고 팔도에서 가장 큰 한양 도읍에서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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