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다르지. 대가집 살림과 쪽박집 살림살이라고나 할까? 살림만 그러느냐? 한양에는 사람도 다르지. 그러니까 여느 집안 한 해 먹거리를 입가심하듯 먹어버리지.”

“푼돈이라도 남의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려면 얼마나 힘을 들여야 하는데,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큰돈을 만지는 사람들이 일을 하겠느냐?”

“일을 안 하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큰돈을 버는 사람은 꿈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일이지. 머리를 써서 여러 사람을 부리지. 큰돈은 그렇게 버는 거여.”

윤왕구 객주의 말이 최풍원에게는 뜬구름처럼 들렸다.

한 뿌리에 쌀이 서너 섬이나 하는 천삼을 숭늉 마시듯 입가심으로 먹는 사람들이 그러했고, 돈을 버는 데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쓴다는 이야기가 그러했다. 최풍원은 한양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은 여각을 나와 삼개나루터로 나갔다. 청풍 같으면 향시가 열리는 장날이라고 해도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 삼개나루는 식전부터 붐비고 있었다. 한양에는 오강이라고 해서 다섯 군데의 나루터가 있었다. 이 나루터에서는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물산들을 하역하고 보관하는 각기 다른 특별한 기능을 담당했다, 삼개는 한강 하류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강운과 해운의 중심지였다. 나루터 포구에는 수백 척의 배들이 빽빽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한양의 대표적인 나루터 중 한곳으로 주로 삼남지방에서 오는 곡물을 풀어내려 보관하는 동시에 서해에서 올라오는 수산물이 풀어지는 곳이 삼개였다. 삼개나루는 한양에서 필요로 하는 농수산물은 물론이고 팔도 각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산들이 풀려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삼개나루는 전국 각지의 배들이 몰려들어 실려 오는 물산들을 내리고 싣고 하느라 사시사철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니 어떤 물건을 팔아도 장사가 될 것 같았다.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이 자신들의 짐이 실려 있는 경강선이 정박해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보시게, 윤 객주 여길세!”

워낙에 많은 배들이 밀집해있는 터라 어떤 배인지를 몰라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을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덕필 선주였다. 마 선주는 어느새 나와 뱃꾼들과 함께 배에 올라 있었다.

“마 선주, 일찍 나왔네 그려!”

윤왕구 객주가 뱃전에 서있는 마덕필을 올려다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여기 있는 짐을 다 부리려면 서둘러야지. 조금만 있으면 여기는 배와 사람들에 치여 도떼기 판이 될 걸세. 그러기 전에 짐을 대충 나루터에 부려놔야지”

그러고 보니 공납할 물품들은 이미 배에서 내려져 나루터에 쌓여있었다.

“이것들이 함 대고 시전으로 갈 물산들인가?”

“그렇다네.”

“이제부터 이것들을 시전까지는 무엇으로 나르는가? 이걸 다 나르려면 짐꾼들이 수 백은 불러야 하겠네.”

윤왕구 객주가 쌓여있는 물산들을 보며 걱정이 되어 말했다.

“어느 세월에 이 많은 것들을 일일이 등짐으로 나른단 말인가?”

“그럼 사람들 등짐 말고 뭘루 짐을 나른단 말인가?”

“마차 스무 대면 거뜬할 일을 뭣 때문에 짐꾼들을 쓴단 말인가?”

“마차가 여기 뱃전까지 들어온단 말인가?”

윤왕구 객주는 배에서 곧바로 마차에 짐을 옮겨 실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최풍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충주나 청풍 북진에서는 나루터에 마차가 들어올 수도 없었다. 배가 닿는 나루터는 모래밭이거니 진흙바닥이어서 마차는 들어올 수도 없었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빈 마차면 몰라도 짐을 싣고 나면 바퀴가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니 배에서부터 본방 창고까지 사람들 등짐으로 옮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달리 없었다.

“윤 객주, 자네가 서있는 바닥을 보게!”

마덕필 선주가 손가락으로 윤왕구 객주가 서있는 나루터 바닥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걸어왔던 삼개나루 흙바닥과는 달리 경강선이 정박해있는 나루터 포구와 강가 언덕배기까지는 일직선으로 곧게 널빤지를 깐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정도 길이라면 아무리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라도 나루터 갯벌에 빠지지 않고 얼마든지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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