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은 술이다.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거래처 등 1년을 마무리 해야할 곳이 너무 많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기 십상이다. 쉽게 빠질 수도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술은 아직도 사회생활의 기본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술 앞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물론 술은 개인이나 직장에 많은 도움을 주지만 피해를 줄 때가 많다.
“일차에서 끝냅시다. 이차, 삼차는 삼갑시다. 사람 잡을 일 있습니까. 오직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십시다. 육체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합시다. 칠칠치 못하게 월차나 내면 안 됩니다. 팔팔하게 일할 내일을 생각합시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입니다. 열(십)심히 열심히 노력합시다.”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만든 음주 10행시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적절한 내용이 많지만 너무 자조적이어서 씁쓸하다.

상상을 초월할 때 많다

연간 국내 술 소비량은 어마어마하다. 소주의 경우 1년에 28억병이나 된다. 성인 남녀의 순수알코올 소비량은 슬로베니아에 이어 2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충북도민들은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소주를 마셨을까. 지난 9월말 현재 8천126만8천500병. 월 평균 약 902만9천833병을 소비했다. 이 달 말까지 합산하면 1억835만8천병으로 잠정 집계된다. 충북도의 인구는 지난해말 현재 150만558명이다. 1인당 72.2병씩의 소주를 먹어 치운 셈이다. 또 소주 한 병의 양이 360㎖인 점을 감안하면 390만887t에 이르는 양이다. 1t 트럭 390만887대 분량이다. 진천군 초평저수지(통상 1천300만t) 담수량의 30%다.

직장인 가운데 상당수는 요즘 잠자리에서 일어나 흠칫 놀란 경험을 갖고 있을 게다. 찰나의 확인과정을 거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엔 한숨과 함께 절망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고 주변엔 아무도 없다.

술은 종종 어제의 즐거운 유흥을 오히려 오늘의 걱정거리로 만들어 주곤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위기 상태를 현명하게 극복한 가정도 있지만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곳도 많다. 그래서 남편, 아내 할 것 없이 술 덜 취하는 방법을 찾고 몸에 좋다는 약까지 먹는다. 온갖 비법이 다 동원된다.

대한민국 술 문화의 가장 큰 단점은 무조건 끝장을 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술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대략 14조원에서 16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손실만 폐해가 아니다. 술은 또 각종 범죄와 밀접한 연관을 맺기도 해 인간의 생사여탈과도 골 깊은 악연을 갖곤 한다. 술로 인한 각종 범죄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도 음주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그 만큼 음주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음주 문제는 작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음주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음주예방교육은 빠를 수록 좋다. 초등학생일 때 교육이 가장 좋다. 늦어도 중학교 때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이미 자신들의 음주 문화를 갖추게 된다. 음주문화, 이제 바뀔 때도 됐다. 술의 피해는 종종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

공포가 돼선 곤란하다

갑신년이 나흘 남았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아직 송년회를 마치지 못한 사람들은 술의 공포에 떨고 있다. 송년 모임이 공포의 자리가 돼선 곤란하다. 술의 미학을 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취기의 정도가 심해지면 아주 고약한 실수를 할 수 있다. 술은 지나치게 되면 자신의 신체와 정신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정서와 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음하는 사람일수록 결근·지각률이 높다. 출근을 한다 하더라도 근무 태만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의 생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절제력이 약화돼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결국 좋지 못한 인간관계를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또 음주 집단 간의 배타적 의사소통으로 비공식 집단이 생길 수 있다. 다른 동료들과 제한된 의사소통은 융화력을 떨어뜨려 생산성에도 장애가 된다.

그러나 술은 넘치지 않으면 동료들간의 유대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팀을 공고하게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술이 보유한 최대의 장점이기도 하다. 술로 인한 고통을 고문처럼 겪고도 오늘 저녁 또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세상 때문일까, 겨울비 때문일까. ‘겨울비는 술 비’라 했던가.

함 우 석  < 취 재 부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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