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확실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불과 1-2주 전만 해도 무더위에 살기 어려울 것처럼 ‘더워, 더워’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인사말이 ‘많이 쌀쌀하죠, 어휴 추워요’라고 바뀌었다. 절대 물러갈 것 같지 않았던 무더위가 이젠 기억 저편으로 가버렸다. 그럼에도 올해 더위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것이 객관적 기록으로만 봐도 가장 더웠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폭염과 관련한 여러 기록들 모두 갈아치웠다.

얼마 전 발표한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작년까지 더위와 관련해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한 해는 1994년이었다. 그런데 올해 1994년이 가지고 있었던 기록이 대부분 바뀐 것이다. 폭염이 나타나는 기간 중의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기록은 1994년 25.4도였는데 올해 25.5도로 바뀌었다. 평균 최고기온 30.7도, 폭염일수 29.2일도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8년 여름이 유독 더웠던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대기 상층에 티벳고기압이 자리하고 대기 중·하층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강하게 발달하여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된 가운데, 맑은 날씨로 인한 강한 일사효과까지 더해진 탓이라고 한다. 그리고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는 날도 더 길어졌다. 폭염 지속일수가 가장 길었던 지역은 금산군이며(37일), 광주 36일, 청주 35일, 충주와 전주 34일 순이다. 열대야 지속일수 순위는 여수 29일, 제주 28일, 대전과 청주가 27일을 기록했다. 폭염과 열대야 지속일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전국에서 청주시가 가장 오랫동안 뜨거운 낮과 밤을 보낸 도시였다.

이렇게 청주시가 더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지형적인 조건(분지, 우암산)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필자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이 두 가지 지형조건으로 따지면 단양군과 춘천시가 더 더워야 한다. 그리고 청주시 전체가 다 더워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필자가 사는 동네인 청주시 가덕면은 시내 지역보다 항상 2-3도가 낮았다. 한낮의 온도는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항상 기온이 낮다. 그래서 벚꽃이 피고 만개하는 시기도 청주시내보다 늦다. 올해 청주시내 무심천변의 벚꽃 만개일자는 4월 3일 전후였다. 그런데 불과 10km 떨어진 가덕면의 무심천변 벚꽃은 4월 10일 전후로 만개했다. 상당산성은 4월 15일경 만개했는데, 이곳은 고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럴 수 있지만 무심천 상류지역은 시내와 고도 차이가 거의 없다.

원인은 다양하다. 산을 깎아 택지와 도로를 건설하고 하천을 복개하여 도로를 만들어서 산바람과 강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시내에는 온통 아스팔트, 시멘트로 덮여서 태양열을 그대로 반사하여 복사열을 높인다. 높이 솟은 건물과 아파트는 바람이 흐르는 길목을 막았다. 건물과 아파트마다 에어컨을 돌리느라 뜨거운 바람이 쏟아진다. 마치 도시는 열을 내뿜는 거대한 공장이나 섬 같다. 사람들은 그 공장의 부속품이 되어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것 같다. 이러한 도시열섬현상은 오래 전부터 문제로 제기되어 왔지만, 내가 사는 편리한 도시를 바꿔보자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곧 잊을 테니까. 가을이 가면 곧 겨울이 온다. 올해 겨울은 더욱 추울 것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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