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송구합니다요!”

최풍원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윤왕구 객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보시게, 최 대주! 공납품 외에 다른 물산을 우리 장형에게 넘기면 어떻겠는가?”

마 선주가 공납품 외의 다른 물산들을 여각을 운영하는 자신의 큰형에게 넘겨주기를 원했다.

“…….”

최풍원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윤왕구 객주의 눈치를 살폈다.

“넘기고 말고 할 것은 다음 일이고 일단 만나는 봐야하지 않겠는가?”

“객주 어른께서 도와주세요.”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최풍원이 한양의 장사꾼들과 거래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이번의 경우처럼 많은 종류의 품목과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매매하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하고 두려웠다. 최풍원이 이제까지 장사를 해온 방식은 충주 윤왕구 객주 상전에서 물건을 받아 북진 인근을 돌며 소매를 하거나 각 임방에 분배해서 파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건을 팔아 받은 산물들을 윤 객주 상전으로 가져가 넘기고 차액을 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시세나 물건 값을 흥정하려고 장사꾼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행상을 나가 사려는 사람과 값을 놓고 흥정은 했지만 그것은 소량의 물건이었다. 이번처럼 대량의 물건을 직접 거래하는 것은 처음이니 당황스러웠다.

“어떤 경우든 상대방에게 절대 표정을 읽히지 말게!”

윤왕구 객주가 무슨 일이 있어도 속내를 드러내지 말라 당부했다.

“윤 객주, 저기가 우리 장형 여각일세.”

마 선주가 집들과 집들 사이의 긴 골목을 빠져나와 앞에 나타난 기와와 초가가 섞여 일곽을 이루고 있는 집을 가리켰다. 여각의 규모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담으로 둘러쳐진 여각 안으로 들어서자 관아 마당처럼 넓은 공터가 있고, 그 둘레로 행랑과 창고가 셀 수도 없이 줄나래비를 이루고 있었다. 여각 안에는 각 지방에서 모여든 장사꾼들이 왁자하고 마구간에는 소와 말도 수십 바리가 매어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십 여대는 됨직한 달구지가 열을 지어 있었다. 여각은 웬만한 마을보다도 규모가 컸다. 거기에 비하면 최풍원의 북진임방은 난전의 가가만도 못했다. 최풍원은 여각의 규모에 이미 기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동생, 덕필이한테 소식은 들었소. 특별한 손님이니 객방으로 모실 수 없고 안쪽 사랑채로 드십시다!”

마 선주의 형이라는 여각주인이 객방이 몰려있는 바깥마당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러더니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을 객방이 있는 바깥마당과 담으로 구분되어 또 다른 일곽을 이루고 있는 안쪽 사랑채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마덕출의 뒤를 따라 사랑채로 들어간 최풍원은 또 한 번 놀랐다. 그 안에는 바깥마당의 객방과는 달리 번듯한 기와집 여러 채들이 지붕과 지붕을 맞대고 있었다. 마덕출이 그 중 한 채의 집 안으로 일행들을 인도했다.

“나는 이 집주인인 마덕출이오.”

마 선주의 형이자 여각주인인 마덕출이 먼저 인사를 건냈다.

“형님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뭐가 그리 급하시우! 여기는 충주 상전에서 온 윤왕구 객주고, 여기는 청풍에서 온 북진본방 대주 최풍원 대주요.”

마덕필 선주가 두 사람을 마덕출에게 소개했다.

“원행에 고생은 안 하셨소이까?”

“물길이 좋아 편하게 왔습니다. 그런데 여각이 대단합니다!”

윤왕구 객주가 마덕필의 여각을 칭찬했다.

“웬걸요. 누추합니다. 이런 여각은 여기 삼개에 수두룩합니다. 그래, 함 대고 시전에 공납품을 가지고 왔다고요?”

“함 대고를 아시오?”

“한양에서 장사하는 장사치 치고 함 대고를 모르면 장사꾼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거기에 대면 나는 올챙이지요!”

“형님은 어찌 그리 수그리하시오! 형님하고 함 대고는 장사하는 길이 다른 것을. 윤 객주, 실은 나와 함 대고가 장사를 처음 시작한 것도 배운 것도 우리 형님 밑에서였다오. 지금은 함 대고가 팔도에서 알아주는 거상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가 다리도 안 나온 올챙이었지요. 우리 형님도 한강 연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떠르르한 거상이오!”

“누추한 집 한 채 가지고, 오가는 길손들에게 주막이나 하는 처지에 무슨 떠르르한 거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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