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승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예부터 우리민족은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술을 마시는 것이 흠이 아니라 풍류를 알고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멋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술 한 잔에 시(詩)를 읊으며 뜻처럼 되지 않는 현실세계의 고뇌를 잠시 잊기도 하지만, 기쁜 날에도 술을 가까이하며 흥을 배가시켰다.

이러한 우리들의 음주 DNA는 산행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산악회든 친구들끼리의 산행이든, 정상이나 잠시 휴식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술잔이 오간다. 물론 산행을 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땀을 흘리면 시원한 술 한 잔 정도는 무슨 흠이 될까 라는 생각도 있지만, 산행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대부분이 음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전국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은 연간 4천700만명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생각하면 국민 모두 1년에 한 번은 국립공원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국립공원과 달리 우리는 집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천혜의 자연환경이 뛰어난 산과 국립공원의 다양한 탐방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국립공원은 국민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지키고 보호·관리하는 공단 직원들의 자부심이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귀결된다.

특히 속리산국립공원은 세조길 개통, 법주사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호재를 맞아 탐방객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탐방객 증가 효과와 함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최근 6년 동안 전국 국립공원 내에서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가 64건 발생했다. 이중에 사망사고는 10건에 달하고, 속리산국립공원에서도 같은기간 4건의 사망사고 중 음주와 직·간접적 영향이 있는 심혈관질환 사망이 2건 발생됐다. 공원 정상부에서의 음주행위는 즐겁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의 장소인 국립공원 산행이 생각하기 싫은 악몽의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를 인식,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3월 자연공원법을 개정해 음주행위 금지구역을 지정해 음주 적발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이달 중순부터 집중단속에 들어간다. 이에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도 탐방객이 가장 많이 찾는 문장대, 천왕봉, 도명산, 칠보산 정상 일대를 음주행위 금지구역으로 지정해 음주행위로 인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다.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 예상치 못한 반발과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음주행위 금지 단속으로 인한 풍선효과로 탐방객들이 물병에 술을 갖고 오거나 알코올 도수로 단속직원과 마찰이 생길 수 있어 술 한 잔인데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음주행위로 인한 고성과 술냄새 등으로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인지해 성숙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하겠다.

‘술에 취하지 말고 자연에 취하세요’라는 문구처럼 알코올로 인한 잠시 동안의 흥보다는 풀냄새, 새소리에 취해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심신의 안정과 재충전, 그리고 행복한 휴식을 갖는 시간이 돼야 한다. 변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운 국립공원 모습을 후손 대대로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성숙한 의식은 어떤 경제적 가치로도 측정할 수 없는 훌륭한 유산이다. 산행 후의 정상주(酒)문화, 이제는 추억속의 이야기로 남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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