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길  < 주성대학 전임연구원·문학박사 >

세모가 온다. 거리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해가 갈수록 세상 인심이 각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한 쪽 거리에는 노숙자가 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선 수백억원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가 내야 할 연체된 수십억원의 세금을 못 내겠다고 떳떳하게 얘기하는 세상이다.

정직하게 세금을 낸다면 굳이 다른 명목으로 더 거둬야 할 이유가 없다. 탈세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세율이 너무 높아 현실적이지 못하다니 정직한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보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오염도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복지가 잘 된 스웨덴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소득의 50% 정도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를 믿고 있다는 것이고, 쓰여지는 돈, 모두가 사회복지차원에서 국민들에게 그대로 환원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부자에 대한 대우 해줘야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만연돼 있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미국사회에서는 이미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다.

사회각계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고 있으며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또한 그만큼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많기 때문에 기부문화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도 기부금을 내게 되면 소득공제의 혜택을 받는다. 최근 삼성그룹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20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으로 내놓았다. 지난해보다 2배로 올린 성금액이다.

이러한 노력이 어느 한 기업체의 힘만으로 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기부한 자에게 더 많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연금을 예로 들자. 직장인이 연금으로 낸 것에 대해 노후에 받는 혜택이 전 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많이 낸 사람이 노후에 많이 받게 된다는 상식에 어긋나게 된다.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거나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이 노후에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들이 하는 봉사와 내 놓은 기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봉사의 의미가 무보수이어야 하고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다. 또한 봉사하거나 기부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기부금을 내놓았을 때 그들에게 보답을 해 주는 것이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데 많은 활력을 줄 것도 확실하다.

경제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한다. 지금 로타리, 라이온스 등 많은 사회봉사단체들이 있고 이 단체들의 봉사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좀더 많은 단체들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봉사 단체나 개인들의 기부금에 대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사후에 대우받을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여유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금을 선뜻 내놓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온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놓는 기부금에 대해 있으니까 내놓는다고 하며 당연시 여기는 것은 몰염치하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편에서도 대가없이 받기만 한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기부자에 대한 대우를 해줘 사회적으로 우대 받도록 해 준다면 기부문화는 좀더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04년도 해가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면 금년과 같이 어려운 해도 없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경기체감의 정도는 심각하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 휴학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

이 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은 노령화시대에 오도 갈 곳도 없는 노인들을 부양하는 일이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사회복지차원에서 다양한 제도의 정착과 아울러 기부문화의 정착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긴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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