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것도 다 제 타고난 복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확연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느낌이 언뜻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벗어나면 될 텐데 왜 그러고 사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선주님, 곳곳에서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 잘못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전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기보다는 일하는 놈보다 일도 하지 않고 중간에서 뜯어먹는 놈이 더 많고 더 많이 먹으니 힘든 게 아니겠는가?”

“그들이 관리고, 땅 주인이니 놀고 더 많이 먹는 건 당연한 게 아닌지요?”

최풍원도 농민들의 삶이 힘겹다는 것은 이제껏 장사를 다니며 본 일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마을을 가나 농민들 살림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궁기를 면할 정도의 집구석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최풍원은 생각했다. 그리고 가진 사람들이 먹고 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 삼는 마 선주의 말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놀고먹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놀고먹으면서 해마다 세금은 높이고 소작료는 늘려가니 문제가 아닌가? 농민이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다 보니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우니 어찌 그걸 당연하다 할 수 있겠는가?”

“왜 농민들이 일을 하는데도 나아지기는커녕 어려워진단 말입니까?”

“일하는 사람과 소출은 똑같은데 거둬가는 곡물은 해마다 늘어나니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일하는 농민들 아니겠는가?”

“왜 농민들만 피해를 본답니까?”

“그럼 누가 보겠는가? 그리고 나라에는 엄연히 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최 대주 그 법이 농민들 편을 들어주는 것 보았는가?”

마 선주가 콧방귀를 꿨다.

그건 그랬다. 나라 국법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진 자들이 저들의 재산을 지키고 배를 더욱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 권력이나 축적한 부를 가진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지 가난하고 힘든 백성들을 위한 법이 아니었다. 나랏님이나 관리들의 안중에 불쌍한 백성들은 보이지 않았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서로 결탁하여 서로의 뒷배를 봐주며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주리를 틀어 조금이라도 더 제 곳간을 채울까만 골몰했다. 그러면서도 제 손에는 더러운 피를 묻히는 법이 없었다. 자신들은 집안에 들어앉아 곰방대만 두들기거나 사랑에 앉아 음풍농월만 즐기고, 궂은일은 아랫것들에게 시켰다. 원님 행차에 길라잡이가 더 행세를 부린다고 심부름을 하는 아랫것들은 주인보다 한 술 더 떴다. 쌀 한 말을 받아오라고 하면 두 말 서 말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주인에게는 한 말을 갔다 바치고 나머지는 제 주머니를 채웠다. 가난한 백성들의 살림이 펴지기는커녕 점점 고랑탱이로 빠져드는 것은 그 까닭이었다. 그래도 백성들은 관아에 억울함조차 고변할 수 없었다. 설령 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부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재물을 관아 관리들에게 바치고 입막음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외려 고변을 했다가 역으로 무고죄를 덮어쓰고 엉덩이가 터지도록 곤장을 맞은 백성이 고을마다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몸이라도 보존하려면 억울해도 참는 게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쨌든 최풍원은 마 선주를 통해 농민들이 어렵게 사는 것이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최 대주! 세상만사가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원인과 결과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네. 그러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알려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잘 풀어야 한다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큰 장사를 하려면 그런 세상 흐름을 잘 읽고 간파해야 한다네. 장사가 그저 물건만 팔고 사는 일이라 생각하면 장사치에 머물고 말 것이며, 세상 이치가 그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며 물건을 사고 팔면 거상이 될 수 있을 것이네. 명심하게!”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에게 한 수를 띄워주었다.

“윤 객주는 장사해서 무슨 학자가 되려나? 장사꾼 주제에 세상 이치는 무슨 세상 이치인가, 그저 장사를 해먹으려니까 세상 눈치를 좀 보는 것뿐이지!”

마 선주가 윤왕구 객주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핀잔이 아니라 최풍원에게 던져주는 장사꾼이 지녀야 할 지침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두 분께 배우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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