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맑은 창 너머로 지상을 향해 날아가는 사내들의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우리 집이 나타났다. 가로등이 희뿌옇게 비치는 것을 보니 새벽인 듯싶었다. 마치 생중계를 보는듯했다.

“당신은 애들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그 망신을 당하고 잘 나가던 우리 ‘백제항공’의 위상을 땅에 떨어트리게 만든단 말이오?”

“그게 왜 내 책임인가요. 일 바쁘다고 밖으로만 나돌며 애들 신경이나 썼어요? 그저 달라는 돈이나 펑펑 줘 놓고선 왜 내 탓을 해요.”

“어허, 나는 회사 일만 해도 눈코 뜰 새 없는데 언제 그런 일까지 챙겨요. 가정교육은 여자들 몫이에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나는 그래도 가정부와 정원사에게나 막말을 했지 해외 명품 가방이나 귀금속 같은 것은 시키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당신이 하도 갖고 싶어 하니까 내가 회사 직원들 시켜서 들여오게 만든 것을 모른단 말이오?”

우리 부모가 저런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윽고 아빠가 중대결심을 한 듯 차분하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만둡시다. 이제 와서 당신 탓을 해서 뭘 하겠소.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 불러온 화근이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토록 강인하고 꺾일 줄 모르던 아빠의 입에서 저런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때가 된 듯하오.”

“그게 무슨?”

“당신은 저 수많은 사람의 원성이 들리지 않소?”

“우리가 그런 소리 어디 한두 번 들어요?”

“이제 나는 그런 소리 듣는 게 무서워요. 어느 날은 잠들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운 때도 많았어요.”

“그렇게 소심해서 그 큰 사업을 어떻게 지켜왔어요? 원래 여론이란 게 한동안 떠들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 마련이잖아요. 앞으로 며칠 그러다 말겠지요.”

지붕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검은 천의 사내 둘이 성큼 내려선다.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괴이쩍게 느껴졌다.

“자! 가자”

“저승사자님!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곳만은….”

아빠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젊은이들에게 애원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보! 여보!”

엄마의 비명이 다급하게 들려왔지만 사내들은 우리 부모님 팔을 한쪽씩 끼고는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이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 가슴이 철렁했다. 붙잡혀 있긴 해도 언젠가는 부모님이 나를 구해주고 저 버릇없는 사내들을 혼내 주리라 생각했었는데….

“아빠! 엄마!”

나는 목이 터져라 있는 힘을 다해 불렀지만, 부모님 귀에는 전해지지 않는가 보다. 이윽고 부모님이 나를 다그치던, 수염이 석 자나 되는 노인 앞에 내려섰다. 그다음이 더 황당했다. 노인을 보자마자 두 무릎을 꿇는다.

“백제항공 주대양과 그의 처 유별란을 잡아 왔습니다.”

“그래. 가서 쉬어라.”

“옥황상제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뭐! 옥황상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저승에 와있음이 분명했다. 그 와중에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삶을 구걸하는 아빠가 무척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 네 잘못을 아느냐?”

“그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과정에 혹 잘못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솔직해서 좋구나. 그래 무엇을 잘못했느냐? 어디 한번 들어보자.”

“네. 선대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날틀 사업에 전념하면서 다른 날틀 사업자들은 발도 못 붙이게 했으며 직원들에게는 적은 급여를 주면서 혹사 시켰습니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너는?”

이번에는 옥황상제가 엄마에게 묻는다.

“저는, 취업하기 위해 외국에서 들어온 불쌍한 여자들에게 많은 월급을 주며 먹여주고 재워준 죄밖에는 없습니다.”

“정녕, 그들을 위한 일이었더냐?”

“그렇습니다. 정원사, 경비원, 운전사 등 정신이 해이한 사람들에게는 정신교육도 시켰는데 항간에서는 그 일을 두고 ‘갑질’ ‘폭행’ 운운하고 있어 억울하기 그지없습니다.”

“허! 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구나. 너희는 금수저로 태어났길 망정이지, 남들처럼 흙수저였다면 그만한 사업을 가지지도, 이 사회에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는 잘못한 게 없느냐?”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축내지 않기 위해 상속세를 신고하지 않았고, 지금 정부에서 부르짖고 있는 고용정책과 소득주도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사무장 약사를 고용해 수익을 많이 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회사 임원 및 직원들은 저의 탁월한 경영방침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옥황상제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그 일 말고는 잘못한 게 없더냐?”

“아닙니다. 제가 저지를 잘못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니 다행이구나. 그래 앞으로는?”

“저를 땅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만 하면 오갈 데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불쌍한 사람과 독거노인을 위해 건물과 병원을 지어 그들을 치료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공익사업을 하겠습니다.”

“정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래?”

“그리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과 저희 집안 가족으로 인하여 상처 입고 피해를 본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여보! 아무리 그래도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전 재산은 안돼요.”

엄마가 정색하며 아빠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빠, 내 것은 건드리지 말아요.”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내 목소리가 아빠에게 들릴 리 없을 거니와 내가 이곳에 와있는 것도 모르니 더욱 안타깝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요. 우리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삽시다. 지금껏 모은 돈은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 직원들과 국민이 벌어준 돈이에요. 우리 후손들은 공정한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희망합시다.”

엄마는 그 말을 수긍하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어이가 없어서인지 허공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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