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원  <옥천담당취재부장>

망년(忘年)이란 말은 그 해의 고로(苦勞)를 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나이를 잊어버린다’, ‘나이든 것을 잊어버린다’, ‘나이 차이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망년의 년(年)을 한 해 두 해하는 해가 아니고 나이(歲)로 파악했다.

그래서 선인들은 지위를 불문하고 나이 어린 사람의 재주나 인품을 존중해 사귀는 친구를 망년우(忘年友)라 했고, 나이를 초월한 사귐을 망년교(忘年交)라 했다.

일본 풍속에서 온 망년회는 한 해의 노고를 잊는다는 뜻의 망년인 반면, 우리나라는 나이(歲)를 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일본에서는 1천400여년 전부터 망년 또는 연망이라 해 섣달그믐께 친지들과 어울려 주식(酒食)과 가무로 흥청대는 세시민속이 이어져왔는데 이것이 오늘날 망년회의 뿌리가 됐다.

중국에서도 연말 흥청거리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별세(別歲) 또는 발산(潑散)이라고 불렀지 일본처럼 망년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유럽 역시 크리스마스부터 이듬해 1월6일까지를 십이야(十二夜)라고 해서 열두개의 촛불을 켜놓고 하룻밤에 하나씩 꺼나가며 신에게 한가지씩 참회하는 풍속이 있었다.

게르만국가들도 섣달 그믐날 조상의 혼령이 찾아온다 해 집안에 촛불을 켜놓고 고인이 즐겼던 음식을 차리고, 난로 곁에 고인을 위한 빈 의자를 놓아두는 그런 경건한 수세를 했다. 즉, 가족친지들이 조촐하게 어울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정도다.

우리나라는 섣달그믐에 친지들과 어울려 마시고 즐기는 모임자체가 없었다. 다만 섣달그믐에 망년이 아니라 수세(守歲)라 해 흥청대는 일본 풍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은 방과 마루·부엌·마구간·측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1년내내 그 집안의 사람들의 선악을 꿰뚫어 보았던 조왕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성스러운 밤이었다.

부엌신인 조왕신은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고한다고 믿었고 이날 밤에 하강하는 부엌신을 맞아야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우리조상들은 연말 1주일은 1년동안의 처신에 대한 심판을 받는 엄숙한 나날이기에 근신할 수밖에 없었다.

망년회는 한 해를 잊는 모임이라는 의미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되돌아보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기회라는 점에서 유익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망년회라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겨야 직성이 풀리고, 매년 12월만 되면 이러저리 얽혀 흥청대는 망년병은 여전하다. 이는 우리 전통에는 없는 외래성 흥청들이다.

한데 올해는 불황으로 호텔 등에서의 망년모임이 줄고 규모도 조촐해졌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각종 연말모임으로 흥청대는 망년패가(忘年敗家)의 모습이 아닌 연중 단 한번이라도 초자아로 돌아가 한해를 반추하는 그런 망년(세모)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흥청대는 왜식(倭式) 망년회보다 섣달그믐날 가족친지들이 모여 집안에 촛불을 커놓고 경건하게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아 한국적인 수세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덧붙여, 대구의 한 극빈층 가정에서 남자아이가 장롱 속에서 영양실조로 숨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저미어 오는지 모르겠다.

추울 때면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먹던 밥도 나눠주는 우리 이웃에 대한 나눔과 사랑이 망년회로 잊혀지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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