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찌는 듯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푸른 숲이 우거진 산사(山寺)를 찾았다. 적막한 절 입구에 연못이 있다. 작은 연못이지만 혹독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연꽃이 피어난 것이 하도 아름다워 눈길을 끌었다.

연근(蓮根)의 아름다운 숨은 노력은 자연의 섭리(攝理)라 하지만 천상의 성스러운 꽃을 피우니 불심의 은혜를 입었음이요, 석존(釋尊)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 불심을 축복하는 환희의 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가 어느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존귀한 생명의 탄생에는 연근처럼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음이요. 그 근원(根源)을 살펴보면 아득한 선조들의 혼을 이어받아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슬프고 괴로워 세상 살기 힘들다 해도 인간의 탄생은 축복이요,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 갰는가.

아들딸이 잘되라고 어떠한 희생도 참아가며 사시는 우리들의 부모님! 그 사랑과 정(情)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요 인류문명의 발전도 선조들의 빛난 얼과 피땀 어린 정성로 이루어 졌으리라. 이처럼 뿌리는 성장과 번영을 가져오는 존엄한 가치를 창조하는 힘이 있기에 잎과 가지가 더욱 무성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밀세.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끝 힐 세’하는 서사시가 무엇을 의미할까. 조선왕조 넷째 임금이신 세종대왕은 여섯 선조들의 빛난 업적을 처음 창작한 한글로 가사를 지으셨다. 그것이 용비어천가로 국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민본주의라 할 뿌리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자유,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민주주의도 국민을 위한 민본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를 낳으시고 가르치신 연꽃뿌리와 같은 부모님! 지금은 북망산에 잠든 부모님 사랑이 연꽃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부모 되고 보니 그 깊은 사랑이 그립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가슴 아파도 다시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이것뿐인 것 같다.

우리들의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무엇일까. 자신이 잘되기보다 자식이 잘되기를 보는 일이다. 부모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은 견딜 수 있어도 자식이 고통 받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 부모 마음이다. 자신은 연근처럼 진흙에 뿌리를 박고 살아도 자식만은 연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늙어가는 서글픈 우리 부모들의 숭고한 사랑이 외면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폭염(暴炎)을 피해 푸른 숲 그늘 밑에서 물위에 떠있는 연근 같은 옛 부모 사랑을 못 잊어서 산에 지는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면서 산사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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