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지인의 아내가 직접 겪은 섬뜩한 일이다. 남편과의 다툼으로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며칠이 된 어느 날 이었다. 낮에 여름철 이불을 정리하고 침대에 쌓아 두었는데, 그만 저녁까지 그대로 두게 됐다고 한다. 잘 시간이 되어 아내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었고, 남편은 침대에서 잤다. 그렇게 잠이 들고 이른 새벽에 뒤척이는 소리에 아내가 얼핏 잠이 깼는데, 어둠속에서 남편이 침대에 걸터앉아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는 새벽일을 나가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순간 아내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로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는 긴장이 몰려왔고 식은땀까지 흘렀다. 방 안에는 시계 초침소리 이외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아내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아내는 온 몸이 아프고 떨려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큰 용기를 내어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남편은 침대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순간 몸이 축 늘어지면서 긴장이 풀리긴 했지만, 한편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실상은 이랬다. 새벽에 남편이 자다가 잠시 뒤척였는데, 아내는 침대에 쌓아둔 여름 이불을 남편이 새벽일을 나가려고 일어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며칠 동안 냉랭한 관계로 인해 자신에게 분노를 느낀 남편이 노려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생각 때문에 아내는 30분가량을 무서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그 당시 그 아내의 마음이 참 아프고, 지금도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것은 그 새벽에 아내에게 왜 그런 마음을 들었을까? 라는 것이다. 필자의 아내는 남편이 쳐다본다고 느꼈을 때 왜 돌아보지 않았나? 그리고 남편이 말없이 쳐다보는 것에 왜 무서움을 느꼈나? 라면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수년간 부부상담 사역을 하면서 이 아내와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나이, 성별, 직업, 돈에 관계없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 깊이 들여다보면 대부분 자신의 ‘생각의 노예’가 되어 마음을 아파하고 있다. 단지 몸을 돌려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을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긴 시간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마음과 사실을 잘 분리하지 못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기 때문에 말을 더듬거나, 앞에 나서지 못하거나, 몸을 떨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모두 거짓이다. 내가 실수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비웃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나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내 ‘생각’이고, 그 거짓 생각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되며, 내 ‘몸’이 떨리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라 ‘나의 일 부분’이며 내가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내 마음과 일상이 훨씬 자유롭고 편안해 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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