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희 수필가

육거리 시장 좁은 골목에는 빨강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바구니마다 푸성귀를 담아 놓고 행인들의 눈길, 발길을 잡는 노인들은 육거리 시장과 함께 늙어간다. 그들의 두껍고 갈라진 손톱에 나물 물이 들어 검은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옛날 시골에서 살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아릿해온다.

세월이 좋아지면서 재래시장도 활성화가 됐다. 이제는 골목에서 비바람을 맞지 않아도 되지만, 장사를 평생 업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상인들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간절함이 느껴진다.

재래시장에는 볼거리가 많다. 육거리 시장의 생선 파는 아저씨는 생선비늘이 더덕더덕 묻은 손으로 비린내를 풍기면서 생선 손질하는 모습이 제격이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는 몇 십 년째 단골이라고 반가워한다. 문득 생각이 난다. 사십 여 년 전 시골 살았을 때 농시지은 배추로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 30여포기를 팔아오라고 하셨다. 시집살이 하던 시절이라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에 싫다는 말을 못하고 리어카에 배추를 실고 육거리 시장으로 갔다.

배추를 사라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걸어오는 낯익은 사람이 눈에 띄었고 순간 나는 도망을 쳤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 하도록 두근거렸다. 내게 다가 온 사람은 바로 여고동창생이며 우리 반 실장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은 친구였다.

리어카에 배추를 실어놓고 앉은 내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사모님 같이 차려입은 그 친구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배추가 걱정되어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와 보니 리어카에서 배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에 화끈 열이 난다. 지금 같으면 무공해 배추라고 자신 있게 손님들을 잡았을 텐데. 그땐 배추 파는 일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육거리 시장은 아직 인정이 남아있다. 시장에 가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보리밥 집에서 쓱쓱 비벼 보리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오면 푸성귀를 놓고 앉아있는 나를 닮은 노인네들이 까칠하게 그을은 손을 내민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나리 한 다발을 사도 덤으로 한 줌 더 얹어주는 그 인심이 오늘도 나를 육거리 시장으로 이끈다. 하루가 다르게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점점 편리해져 가는 생활방식이 재래시장을 외면할 지라도 그곳에서 만나며 느끼는 인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외로울 때 시장에 가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정을 느끼듯이 모든 사람들이 재래시장을 이용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훈훈한 곳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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