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는 산허리를 깎아 만든 집이 두 채 있었다. 한 채는 조그만 암자였고 그 밑에 일자형 단독주택이 있었다. 단독주택 마당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있었고 곳곳에 화분이 놓여있었다. 아침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마당을 쓸고, 화분을 들여다보고, 일일이 잎을 닦아 주고, 물을 주었다.

그해 봄, 시끌벅적한 소리에 내다보니 포크레인이 암자 옆 땅을 파고 있었다. 확장공사를 벌이는가 싶더니 전에 없던 큰 법당이 들어섰다. 절 마당은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갔다. 여름이 되자 마침내 아랫집 담 옆구리를 지나는 긴 계단까지 놓였다.

며칠 장대비가 내렸다. 맑게 갠 일요일 아침, 칼국수를 끓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는데 우르릉 꽝! 하며 갑자기 집이 흔들렸다. 순간 싱크대를 잡으며 거실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뛰어와 아이들을 안았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밖을 내다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멀쩡하게 서 있던 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토사가 단독주택을 덮친 것이다. 집도, 마당도, 화분도, 나무도 순식간에 황토색으로 변했다. 토사는 아파트 주차장까지 흘러내렸다. 절은? 하고 바라보니 절 마당도 흔적이 없었다. 법당만 위태롭게 서 있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렇게 지형이 바뀌는 데는 단 몇 초간 울부짖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 무시무시한 소리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이 저 속에 있어요. 우리 딸이요. 아이고, 우리 며느리 어쩐대. 임신한 우리 며느리! 넋이 나간 듯 토사 더미를 손으로 파헤쳤다. 물뿌리개를 든 할아버지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맨 먼저 119 구급대가 달려왔다. 앰블런스도 대기했다. 집 구조 파악을 위해 짧게 문답을 나눈 소방대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난지로 뛰어들어 토사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삽을 잡은 손의 힘줄이 불거지는 게 보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들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장정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가까운 부대에서 군인들도 트럭을 타고 왔다. 마치 작전을 하듯 일사불란하게 매몰 추정지점을 파내기 시작했다. 아낙들은 연신 그들에게 물과 커피, 라면 등을 날랐다. 조심스럽게 한 삽 한 삽 떠내는 그들의 손길에 경건함이 배어 있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목소리가 들려요!” 하는 외침이 있었다. 와! 하는 함성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의사와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갔다. 구조된 이는 할머니의 딸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한쪽 팔만 다쳤을 뿐 기적적으로 살아있었다. 그녀를 실은 구급차가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나는 애타는 심정이 되었다. 임신한 며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두커니 서 있는 젊은 남자가 그녀의 남편인 듯했다. 눈길조차 주기 힘들었다. 토사가 가장 많이 쌓인 곳이 그녀의 매몰지로 지목되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자꾸만 그 토사 더미에 눈길이 쏠렸다.

구조팀이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이 파 내려가는 동안 다른 팀은 물을 마시고, 주먹밥을 먹으며 쉬었다. 30분마다 교대를 했다. 파도, 파도 매몰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몫 거들러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물을 잔뜩 머금은 흙이 무거워 삽으로 뜨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바지에 묻혀온 토사는 아무리 여러 번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긴 여름 낮이 지나고 밤이 되었다. 경광등을 단 트럭이 도착했다. 밤새 조난지를 향해 환하게 불이 켜졌고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대원들은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 나갔다. 졸다가 깨어서 나가 보고 하길 몇 번, 순간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대원들이 순식간에 하얀 천으로 네모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갔다. 한참 후 하얀 천으로 둘러싼 며느리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왔다. 대원들은 일제히 고인에게 묵념을 했다. 지켜보던 친지들이 오열을 토해내었다. 비로소 경광등의 불이 꺼졌다.

아침이 찾아왔다. 목탁 소리가 사라지고 집이 없어진 자리는 어느새 말라 있었다. 바싹 마른 황토에 따가운 여름 햇볕이 내려 꽂혔다.

그 산사태는 인재였다. 절을 무리하게 증축하는 과정에서 물매를 제대로 잡지 않아 생긴 사고였다. 집과 며느리를 잃은 그들 가족은 다시 터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치된 채 널브러져 있던 조난지를 바라보면 원망과 먹먹함이 교차했다. 산을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깎아내렸던 인간의 우매함이 큰 상처를 남겼다.

산은 참으로 오래 우리를 참아주고 있다. 제 몸을 비집고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아파트들을 무연하게 바라보고 있던 산은 때가 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서운 본능을 보이기도 한다. 산에 깃든 삶이 가끔 위태롭기도 하고 하찮게도 느껴진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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