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북진임방을 연 이후 장순갑은 더 쏠쏠한 장사에만 매달리고 있어 요즘 주막은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북진본방 안마당에는 각 임방에서 오는 임방주들과 일꾼들, 그리고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오고 있는 장사꾼들와 그 일행들, 인근마을에서 일을 하느라 본방으로 모여든 일꾼들을 먹이기 위해 임시로 아궁이를 만들고 솥단지들을 걸기 시작했다. 북진본방 주변은 잔칫날처럼 왁작거렸다. 덩달아 북진나루도 강을 건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렇게 북적거리니 청풍읍장 부럽지 않소이다!”

광의 임방주 김길성이었다. 사람 좋은 김길성 임방주는 안팎으로 북적거리는 북진본방을 보며 덕담부터 쏟아놓았다.

이튿날 아침나절에는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가 예닐곱 명의 지게꾼에게 짐을 잔뜩 지워 북진본방에 당도했다. 점심나절에는 학현 배창령 임방주가 스무 명도 훨씬 넘어 보이는 장정들과 소 십여 마리의 잔등에 얹은 길마에 산처럼 짐을 싣고 북진본방에 도착했다. 그 산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학현에서 싣고 온 산물만 선적해도 배가 그득할 것 같았다. 이번에 공납할 산물을 준비하는 임방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곳이 학현 임방과 책임을 맡은 배창령이었다. 학현은 명산으로 소문난 금수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나지 않는 산나물이 없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도 없는 희귀하고 진귀한 것들도 수없이 많았다. 학현 배창령 임방주는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던 초봄부터 마을사람들과 산나물 채취를 하고 갈무리를 해왔다. 그것을 이제 공납 날짜가 다가오자 모두 북진본방으로 싣고 온 것이었다.

“광의리, 학현 임방주님,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최풍원이 두 임방주의 노고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야 꿍꿍 일이나 하면 되지만, 대주는 이런저런 궁리에 얼마나 속이 썩었을 것이오?”

김길성이 외려 최풍원을 위로했다.

“학현 임방주께서는 이른 봄부터 준비를 하느라 더더욱 힘들었을 텐데, 애로점은 없으셨는가요?”

최풍원이 학현 배창령 임방주에게 물었다.

“아무리 농사지을 땅이 없다고 해도 농본기가 됐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산에 들어가 있으니 농사준비를 못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더 어려웠던 것은 나물을 뜯어 팔아야 쌀을 살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으니 그게 제일 힘들었구먼요.”

배창령이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났다. 

학현은 워낙에 깊은 산중마을이라 변변한 땅뙈기가 없었다. 농사를 지을 땅덩어리라 해봐야 비알을 개간해 만든 쇠조밭이 전부였다. 그래도 농사철이 되면 손바닥에 농사를 짓더라도 씨를 뿌려야만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농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할 수 없었으니 학현 마을사람들은 산에 들어가 나물을 뜯고 있으면서도 한쪽으로는 항시 불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학현마을 전체가 산을 뜯어먹고 사는 처지에 봄나물을 뜯어다 팔아야 식구들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데, 공납할 물량을 채우기 위해 장에 내다 팔수가 없었으니 생활이 쪼들릴 것은 당연했다. 일을 하면서도 생기는 것이 없으니 마을사람들은 그게 더 불만일 수 있었다.

“그래, 학현 임방주께서는 그걸 어찌 해결하셨소?”

“대주께서 쌀과 소금을 보내주지 않았소이까? 그걸로 급한 불은 껐지요. 그리고 지난번 춘궁기에 구휼미를 먹은 사람들이 큰일을 했습니다요. 사람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는 것이 도리라며 서로들 설득했지요.”

“그건 우리 광의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우. 젤루 좋은 놈은 북진본방으로 보내야 한다며 상질을 먼저 골라놓고 나쁜 놈들만 장에 내가 팔았다우.”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도 학현 배창령 임방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최풍원이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북진본방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구휼미를 꿔다가 굶주리고 있는 청풍 고을민들에게 풀어먹인 것이 결과적으로는 득을 가져왔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또 구휼미를 얻어먹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최풍원은 공납할 산물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한다. 본심을 다하면 그 본심은 하늘보다도 사람이 먼저 알아주는 게 세상 이치였다. 세상 이치가 꼭 그렇게 순리대로만 흘러간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면 언젠가는 음으로 양으로 좋은 기운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최풍원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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