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임방주님, 이리로 나오시오!”

아낙네들의 수다에 대거리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김상만을 최풍원이 바깥마당으로 불러냈다.

“요새는 여자들이 창피한 것도 몰러!”

김상만 임방주가 투덜거리며 바깥마당에 있는 최풍원을 향해 다가왔다.

이래저래 세상이 바뀌기는 근자에 들어 많이도 변했다. 그것은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같으면 부부가 아니면 한 자리에 앉는 것은 물론 말도 섞지 않았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부끄러워 외면하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례였다. 과년한 처녀라면 말할 나위도 없고, 아낙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정네들이 말이라도 걸 낯이면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옛 얘기였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떼로 달려들어 남정네들을 놀려먹었다. 김상만은 세상 망조라고 툴툴거렸다.

“양평 임방주님, 아주머니들 일하는 데는 뭣 하러 참견을 했다가 우사를 당하시우?”

최풍원이 빙글빙글 웃으며 김상만 양평 임방주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떻게 뜯은 나물인데 티개비 좀 있다고 한 쪽으로 빼 놓잖어. 싸래기 고르려다 쌀 다 골라내는 것 아녀?

김상만은 양평에서 입고시킨 엄나무와 오가피 순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물 백관을 뜯으려면 보통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양평 같은 작은 마을에서 저 정도 양을 준비하려면 온 마을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달려들어도 힘겨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엄나무와 오가피는 가시나무라 새순을 따려면 어지간히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양평에서는 남정네·아낙네·아이들까지 모두 산에 올라 가시에 찔려가며 채취한 나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뜯은 나물인 것을 알고 있으니 좁쌀영감이 아니라 좁쌀에 뒤웅박을 판다고 욕을 얻어먹어도 김상만으로서는 약간의 흠이 있다고 버리는 아낙들의 손질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고사리는 어쩔거나?”

단리 복석근 임방주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우리같이 생물들이니까 문제가 되지 고사라야 말려서 가져가는데 뭔 걱정이여. 더군다나 고사리는 검으니 섞이면 다 마찬가지 아니여?”

말수가 없어 웬만하면 남의 말에 끼어들지 않는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어쩐 일로 말참견을 다했다. 

“고사리도 첫순 하고 두 번째 순은 말려놓아도 확연하게 다르구먼. 첫순은 말라도 통

통하고 때깔이 좋아 보기에도 먹음직스럽지만, 훗물은 누가 봐도 훗물로 질이 떨어지지. 더군다나 대궐로 들어갈 거라잖어?”

복석근이 고사리도 다른 산나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며 혹여라도 맡은 공납량을 채우지 못할까 걱정을 하였다.

“지랄들! 쪼끔 들한 것 먹으면 아가리에 동티나나? 백성들은 그것보다도 훨씬 못한 것도 내다 파느라 없어 못 먹는데 그것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이지 않으면서 혀에 녹는 것만 골라 처먹는다니까. 한양에 가보면 팔도에서 좋은 것은 다 모여있다니께!”

떼꾼을 하며 한양을 수도 없이 다녀온 양평 김상만 임방주가 양반들 질타를 하다 한양 시전거리 풍경도 이야기를 했다.

“양평 임방주님 말처럼, 팔도에서 제일 좋은 상상품들만 모이는 곳이 한양이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 북진본방에서 올리는 물건을 특상품으로만 선별하는 연유라오. 더구나 우리 북진본방에서는 한양 장사꾼들에게 첫선을 보이는 것 아니오? 무엇보다 첫인상이 중요한 것 아니겠소? 첫 번째 잘 보이면 두 번째 기회도 오지만, 첫 번부터 잘못 보이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는 법이오. 이번만 잘하면 우리 북진본방에도 대운이 일어날 거요. 그러니 아깝고 힘들다 생각 말고 이번 일만 잘 해보십시다!”

최풍원이 속속 북진본방으로 모여들고 있는 임방주들을 독려했다.

역시 사람 사는 집이나, 장사하는 집이나 사람들이 왁자해야 활기가 도는 법이었다. 한겨울이라 그러했고, 춘궁기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뜸했던 북진에 구휼미를 나눠주다 난장이 틀어진 이후 또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공납할 물산들을 선별해 정리하고 북진나루에서 배에 선적할 때까지는 나날이 사람들 왕래가 늘어날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제일 큰 문제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난장이 틀어지며 나루터에 몇몇 주막들이 임시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그동안 사람들 발걸음이 뜸해지자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북진에 장순갑 임방주가 예전부터 운영하던 주막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어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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