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달 연론임방주가 최풍원을 한껏 치켜세웠다.

“과찬이오. 남에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소이까. 그런 사람들에게 비하면 염치를 아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오!”

오히려 최풍원은 쌀 되박을 얻어먹고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자기들 일을 제쳐주고 북진본방을 도와준 연론 사람들이 더 고마웠다.

세상이 그래야 될 성 싶었다. 사람 사는 맛이 그런 것이었다. 형편이 되는 사람은 좀 내놓고, 그걸 얻어먹은 사람은 무엇을 해서라도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세상을 살맛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마음이 흐르고 있으면 힘이 덜 들고 위로가 될 터였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그러하지 못했다. 서로 뜯어먹지 못해 야단들이었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라고들 했지만, 세상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세상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었다. 있는 것들, 가진 것들이 더했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 욕심이라지만, 요즘 부자 것들은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곳간에 첩첩이 쟁여놓고도 더 쌓지를 못해 굶주리는 마을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서로들을 믿지 못하고, 호의를 베풀려 해도 믿지를 못하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러니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그리 만드는 것이었다.

“최 대주, 우리 왕발이는 잘 하고 있슈?”

박한달 임방주가 아들 왕발이 근황을 물었다.

“왕발이가 정말 큰 보탬이 됩니다. 지금은 죽령을 갔는데, 아마 오늘 느지막해서나 아니면 내일 아침나절에는 여기에 당도할 거요.”

“죽령은 왜요?”

“경상도 장사꾼들 짐을 받으러 갔소.”

“우리 왕발이가 그런 일도 한다는 말이오?”

박한달이는 아들이 북진본방에서 마당이나 쓸다가 가까운 곳에 기별이나 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장터도 아니고, 죽령 너머에서 오는 경상도 장사꾼들 물건을 받으러 갔다는 최풍원의 말에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더 멀리는 보내지 못하지만, 눈치도 싸고 발이 빨라 일 배우는 솜씨가 빠르답니다. 조금만 더 배워 경험이 쌓이면 요긴한 일꾼이 될 것 같소이다.”

“집에서는 말썽만 피우던 놈인데 잘하고 있다니, 이게 다 최 대주 덕분이외다!”

최풍원의 칭찬에 박한달 임방주가 입이 바소쿠리만 해졌다. 하기야 칭찬하는데 골 부릴 놈은 없었다. 더구나 자식에 대한 칭찬이었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자신에 대한 칭찬보다도 자식 칭찬이 얼마나 마음 뿌듯한지 잘 알고 있었다.

연론 임방을 시작으로 가까운 임방부터 속속 산물들을 지고 북진본방으로 모여들었다. 단리 복석근 임방주는 고사리 말린 것을, 양평 김상만 임방주는 엄나무와 오가피 순을, 교리 신덕기 임방주는 원추리와 씀바귀 그리고 달래와 돌나물을 각기 백여 관 씩 지고 왔다. 각 임방주들이 일꾼들을 부려 지고 온 산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질 좋은 상품들이었다.

그러나 그 산물들이 그대로 한양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각 임방에서 골라진 산물들은 본방으로 옮겨져 다시 특상품, 상상품, 상품으로 구분하고, 이중 특상품과 상상품만 바구니에 담겨져 한양으로 올라갈 것이었다. 티끌만큼이라도 험이 보이며 가차 없이 버려졌다.

“대궐에 있는 양반님네들은 입에 금테를 둘렀나. 이보시오, 그 정도 티개비는 좀 섞여도 괜찮지 않겠소이까?”

양평 김상만 임방주가 마당에서 선별작업을 하고 있는 아낙들에게 말했다.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게 산물들을 골라내자 그게 눈에 거슬려서하는 말이었다.

“아따 그 양반 생기기는 탄탄하게 생겨가지고, 워째 하는 짓은 말랑말랑 하대유.”

“그러게, 바깥양반이 워째서 아낙들 일에 참견을 한디야?”

“좁쌀영감인가?”

아낙들이 저들끼리 쑥떡방아를 찧으며 까르르 웃어댔다.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아낙들의 빈정거림에 얼굴이 벌개졌다.

“저것 좀 봐! 목소리만 걸걸하지, 암사낸 가벼!”  

입이 튀어나와 남 흉보기도 잘할 것 같은 아낙이 손가락으로 김상만 임방주의 불거진 낯짝을 가리키며 주둥이를 쪼슬러댔다. 아낙들이 떼거리로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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