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고유한 독립 권한을 갖고 있는 사법부의 판사가 개인적인 해외 발령을 조건으로 재판거래를 시도하거나, 사법부의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로비성 판결을 내려 애꿎은 피해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관 시절 사법부의 비위가 마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한 겹 한 겹 벗겨질 때마다 충격을 주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이 대법원에 접수되자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 소송에 대해 논의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3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던 2013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면담하고 강제징용 소송의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한 단서를 발견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 소송을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민사소송, 부산지역 건설업자의 뇌물사건 재판 등 여러 대법원 재판을 청와대와 흥정의 대상으로 구상한 문건은 다수 발견됐지만, 이 같은 재판 거래 구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단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전 차장이 청와대를 방문한 시기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다. 신일철주금 상대 소송은 2013년 8월,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같은 해 9월 접수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2013년 9월 작성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 문건에 나오는 대로 일본과 외교관계를 고려해 소송의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청와대와 논의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의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 청와대 인사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확인했다. 법원행정처가 개인들의 민원을 위해 재판거래를 적극 시도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일제강점기시절 강제노동자로 끌려갔다 고초를 겪으며 사망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피해자와 가족들의 재판을 법관으로서 아무런 소명의식 없이 개인의 해외 공관 파견이나 당시 박근혜 정부의 외교 분위기에 동조해 판결해주겠다는 문서를 미리 작성해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인 셈이다. 대체 사법부의 비위 의혹이 어디까지 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단서다.

문재인정부의 탄생을 주도한 촛불시민혁명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새 정부에게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1순위가 적폐청산이었다. 무엇보다 검찰 등 고위공직자들의 적폐청산을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가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대목이다. 지난 보수정권 9년 동안 가장 청렴해야할 사법부가 어느 정도 망가졌는지 이번 기회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양승태 사법부는 한명숙 전 총리,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등 당시 정부의 입맛에 맞게 판결을 내리기 위한 거래가 있었던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전교조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인 만큼 철저히 조사해 사법농단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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