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한라산 관음사코스 등산로는 한라산으로 오를 수 있는 여러 등반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코스다. 보통의 등산객이 8.7km, 왕복 1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나도 한라산을 네 번씩이나 다녀왔음에도 아직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20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휴가 차 갔던 제주도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그나마 편하다는 성판악코스로 올랐던 것이 한라산 등반의 마지막 추억이다.

남편을 졸라 비행기 표를 예약 하고 동네 뒷산을 몇 번 다녀오는 등 나름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로서 여름산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일 폭염이다.

수은주가 35도를 넘나들고 매일 최고기온을 갱신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마를 걱정했더니 비 한 방울 떨구지 않는 하늘은 야속하리만치 뜨거운 자외선을 내리 쏜다.

그렇다고 계획을 취소할 수는 없다.

등산로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일찍 잠을 청했다.

여름날의 해는 아침을 일찍 불러온다. 서둘러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새벽 5시30분이다.

예상대로 여름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다.

너덜길과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생각대로 만만치가 않다. 계속된 오르막과 가파른 계단, 정상 3분의 1지점에서 이미 지쳤다. 땀이 비 오듯 하고 끊임없는 갈증으로 준비해온 물의 반을 이미 다 마셨다.

나의 3, 40대도 그랬다.

계속된 오르막길이었다. 남편의 사업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 어깨위에 짐은 무거웠다. 아이들의 학업문제, 취업 그리고 아들의 사고, 끊임없는 일들이 생겨나는 날들은 마치 지금의 너덜 길과도 같았다.

관음사 코스 등산길에는 휴게소도 없다. 중간지점의 삼각봉 대피소가 유일한 쉼터다.

힘든 오르막길에 그래도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조금만 가면 쉴 수 있는 대피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편안한 평지길이 나온다는 안내도가 위안이 되었다..

거대한 삼각봉 앞에는 등산객을 위한 쉼터가 있었다.

악천후에는 대피를 할 수 있기도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는 곳이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힘을 비축하기도 한다. 간단한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 정상까지 남은 길은 어쩌면 지나온 길보다 더 힘든 길일 수도 있다.

지나온 오르막길의 피로가 잠깐의 휴식으로 말끔해졌다.

아이들이 떠나고 삶의 전환점을 돌아선 우리부부의 요즘 일상은 휴식이다.

끊임없이 내달리기만 하던 남편의 사업도 전환점에 이르렀다. 어쩌면 더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담담히 맞을 수 있다. 삶은 힘든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삼각 봉 대피소를 지나 500m 지점에 샘터가 나왔다. 비워진 물병도 채우고 갈증도 해결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떤 물보다 시원하고 맛있다.

샘터를 지나 한동안 평지길이 이어졌다. 이제야 사진도 찍고 경치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남은 길은 1km 정도다. 조금씩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정상부근에 다가갈수록 멋진 경치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왕관바위 병풍바위라 이름 지어진 기암괴석들이 파란 하늘아래 무늬처럼 서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지나고 한사람이 비켜 지나 갈 수 있는 등산로에서는 누구 먼저랄것 없이 서로를  기다려 주었다.

남편이 손을 내민다. 내 온 힘을 실어 남편의 손을 의지해 마지막 가파른 길에 올라섰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하얀 구름이 둥실 둥실 내려 앉아있는 풍경이 장관이다.

정상이다.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간다.

움푹 패인 백록담에는 20년 전과 다름없이 파란 물이 고여 있고 주변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지나온 길을 내려다본다.

한 무리의 운무가 삼각봉 허리를 휘감고 돌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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