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 출신의 아동문학가 벤 마이켈슨(Ben Mikaelsen)의 소설 ‘나무소녀’를 보면, 한 소녀가 성장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공권력의 횡포로 인권유린을 받으며 살아가는 국민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브리엘라와 마을 주민들은 자연이 지닌 의미와 생명력을 알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전통적 삶을 살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불어 닥친 내전과 치안 부재로 군인들에 의해 가족이 해체당하고 결국 고향을 떠나 난민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이 겪은 가족파괴라는 일종의 공권력 횡포의 피해는 실제로 현재 아프리카나 시리아 등 내전이 끝나지 않은 나라는 물론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도 정권 탈취와 유지를 목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아직도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을 바라지만 여전히 의혹만 남긴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

나무소녀의 주인공 가브리엘라는 국가에 의한 공권력 횡포에 맞서 난민수용소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주인공이 있었던 나라는 국민의 교육수준이 낮아 공권력의 횡포를 그대로 수용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역량을  미래의 주역들에게 교육을 통해 깨우치려고 했다.     

가브리엘라가 정치개혁을 위한 계몽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교육 사업에 자진 봉사를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등장인물 마리오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군인과 경찰에 맞서기 위해 반군에 가담하는 폭력적인 길을 선택해 막대한 국가 권력에 대항한다.

가브리엘라는 자신의 각성(覺醒)이 대중의 각성을 일으키는 촉매제의 역할이 되리라 생각해 아이들 교육을 통해 주권이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가브리엘라와 마리오 둘 다 모두 자신이 맡은 임무와 영역에 충실하여 나름대로 일조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리는 정규 교육제도하에서 주인공처럼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국가 권력에 대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정치행위에 견제(牽制)를 하라고 배우지만 실제로 권력은 그렇게 쉽게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들은 주권을 행사하고 평화를 위해 비폭력 투쟁을 지속하지만 잿밥에 눈이 먼 권력자들은  미래보다는 우선 당장 현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권력에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대항하는 마리오의 선택보다는 가브리엘라의 평화적이고 장차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향상시켜 정치 발전을 꾀하는 선택이 훨씬 더 유용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국가가 강건해야 평화가 유지되고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과 하나의 공동체로 단결된 힘을 축적하고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할 때 비로소 국민들이 국가를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작성된 시대착오적인 계엄 문건은 아직 그 결과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군사정부 시절에나 있을 법한 사태가 오지 않은 것만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군의 정치적 중립과 현실에 대처하려는 의지와 미래의 꿈을 실현하려는 의식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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