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 봉화재를 넘어와 단양·영춘으로 가거나, 제천으로 해서 영월로 가는 강원도 장사꾼, 죽령을 넘어 영주·풍기로 넘어가는 강원도 장사꾼, 죽령을 넘어와 단양·수산으로 해서 봉화재를 넘어 충주로 가는 경상도 장사꾼들이 수산장을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워낙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라 근방에서는 보기 힘들거나 귀한 물산들이 모여들었다.
“청풍도가 놈들이 장마다 자주 진을 치는 연유가 그것이었구먼.”
“그놈들이 그런 물산들을 선점하려고 수산장 패거리들과 짜고 알맹이만 빼서 가지고 간 것이었습니다요.”
“이번 한양으로 올라가는 물산들만 마무리되면 수산장에도 우리 임방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봐야겠구먼!”
최풍원은 수산장에도 북진본방 휘하의 임방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것을 발판으로 청풍도가 상인들을 수산장에서 몰아낼 궁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양으로 올라갈 물산들을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그럴 겨를이 없었다.
“형님, 저는 내일 식전 야들을 따라 죽령으로 경상도 장사꾼들 물건을 받으러 갈까 하는데 어쩌려십니까?”
대방 도식이가 최풍원에게 내일 행로를 물었다.
“난 강수만 데리고 북진본방으로 가도되니, 여기 짐은 나귀에 전부 옮겨 싣고 소도 가져 가고 아이들도 모두 데리고 가시게!”
최풍원이 도식이에게 동몽회원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경상도 물산들을 북진본방으로 옮겨오라고 했다.
“강수와 단둘이 가도 괜찮겠습니까?”
도식이는 혹시라도 수산장 패거리들이 보복은 하지 않을까 후환이 걱정되어 묻는 투였다.
“오늘 된통 당했는데 쉽게 그런 맘을 먹겠는가? 그러니 염려 말고 경상도 물산들이나 잘 단도리해서 가져 오시게!”
최풍원이 도식이를 안심시켰다.
수산장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새벽 최풍원의 북진본방 식구들은 두 패로 나뉘어 길을 떠났다. 수산장 끝머리에서 한 패는 단양으로 최풍원과 강수는 나귀를 몰고 청풍으로 방향을 각기 달리했다.
최풍원이 청풍을 거쳐 며칠 만에 북진본방에 당도하니 상전 안팎이 온통 난장판이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걸어온 덕분에 본방에 도착했는데도 해는 중천이었다. 장석이가 일꾼들과 함께 들어온 물건들을 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분주한지 장석이는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도 모른 채 집 안팎을 돌아치고 있었다.
“장석이 형님!”
최풍원이 소리쳐 불렀다.
“최 대주! 이제 오는 겨?”
장석이가 바쁜 틈에도 최풍원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형님, 고생이 작심하십니다, 그려!”
“최 대주가 떠난 다음날부터 각 임방으로부터 물건들이 들어오고 있구먼. 어제는 대바구니도 모두 들어왔구먼. 저길 봐!”
장석이가 본방 안쪽 마당을 가리켰다.
본방 안마당에는 마당 한가득 멍석이 깔려있고, 대바구니도 처마에 닿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대바구니를 보니 송계 구레골에 남겨두었던 동몽회원들도 탈 없이 본방에 당도한 듯싶었다. 멍석 위에서는 아낙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머리는 임방에서 들어온 산물들을 풀고, 한 머리는 종류별로 분류를 하고, 한 머리는 상·중·하품을 고르고, 한 머리는 그것들을 갈라 바구니에 담았다.
“한양으로 올라갈 물건들이오! 그러니 아주 좋은 상상품들로만 골라 잘 담아 주시오!”
최풍원이 일꾼들을 독려했다.
“나도 평생을 나물을 뜯어왔지만 이렇게 좋은 나물은 첨 봐유!”
“아무리 나물이 좋아도 한양 사람들은 이상도 하구먼, 돈 주고 고기를 사먹지, 이깟 나물은 뭣 하러 사먹는 데유?”
“그런 입빠른 소리 하지도 말어! 한양 사람들이 나물을 사먹으니 우리가 나물을 손질해 돈을 버는 것 아니여?”
아낙들이 입으로는 수다를 떨면서도 손과 눈은 나물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석이 형! 저 아주머니들은 어디서 구한 게여?”
“왕발이한테 인근 마을에 북진본방에서 일꾼을 구한다고 소문을 내라했더니 순식간에 떼로 몰려와 사람도 선별을 했구먼. 지금 일한 아줌씨들은 뽑힌 사람들이여! 벌써 이틀째 일을 하고 있구먼.”
장석이가 본방에서 일하는 동네 아낙들을 뽑은 내력을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