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어느 마을에 성이 주씨인 어여쁜 낭자가 살았다. 낭자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관청 관리인 오빠에게 의탁하며 살았다. 어느 해 나이 16살이 됐을 때 이웃마을 박씨 청년과 혼인을 정하고 날짜를 잡았다. 낭자는 가슴 설레며 그날을 기다렸다.

혼례를 한 달 남겨 두었을 때, 반란군이 들고 일어나 천지사방이 난리였다. 낭자의 오빠는 반란군이 두려워 피난을 떠나기로 했다. 식구들을 수레에 태우고 낭자에게 서둘러 나오라고 재촉했다. 낭자가 보따리 하나를 지고 문밖으로 나왔는데, 그 순간 반란군이 건너편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오빠는 잡힐까 두려워 허둥지둥 수레를 몰아 황급히 달아나고 말았다.

낭자는 반란군에게 납치되어 그 지역 장군에게 끌려갔다. 장군이 낭자의 모습을 살핀 뒤 말했다. “모습을 보니 밥 짓는 일을 시키기에 아까운 아이다. 내 막사로 보내라!” 이렇게 하여 낭자는 장군의 막사에 오게 되었다. 밤이 되자 낭자는 겁을 잔뜩 먹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장군이 말했다. “무서워할 것 없다. 내가 잠자리를 마련해 줄 터이니 거기서 자도록 해라.” 장군이 병사들에게 명해 빈 막사 안에 침대를 하나 들여오게 했다. 그리고 낭자를 그 안에서 자도록 했다. 이후 낭자는 장군을 따라 다니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어느 날 한 청년이 잡혀왔다. 용모가 단정하고 학식이 있어 보였다. 장군은 그 청년을 자신의 비서로 두었다. 주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장군이 외지로 떠나야 했다. 그날 저녁 청년을 불러놓고. 이어 낭자를 불러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낭자가 뜻밖의 말을 했다. “장군님, 저에게는 혼인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장군이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이 난리에 무슨 언약이 소중하단 말이냐? 내가 언제까지 너를 보호할 수는 없다. 나는 오늘 죽을 지 내일 죽을 지 알 수 없는 몸이다. 일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뜻이 맞으면 혼인하도록 하라.”

장수가 막사를 나가자 청년이 낭자에게 말했다. “사실 나도 혼인을 약속한 낭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오빠 집에 얹혀살았는데 이웃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반란군에게 잡혀갔다고 하더군요. 내 신세처럼 말입니다.”

그때 낭자가 청년의 말을 끊고 물었다. “방금 오빠 집이라 하셨나요? 혹시 그 오빠의 이름을 아시나요?” “이름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관리라 들었소.”

그러자 낭자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혹시 성이 박씨인가요? 제가 바로 주낭자입니다.” 청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대가 주낭자란 말이오?” 둘은 손을 맞잡고 슬프고도 기쁜 눈물을 흘렸다.

그때 장군이 들어왔다. 그들이 사연을 듣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너희둘이 바로 하늘에 내린 천생연분이도다!”장군은 다음날 막사에서 두 사람의 혼례를 치러주었다. 이는 청나라 무렵 포송령이 쓴‘요재지이(聊齋志異)’에 있는 이야기이다.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하늘이 정해준 인연으로 잘 어울리는 부부 또는 좋은 배필을 만나 의좋게 잘 사는 부부를 말한다. 사람은 인연이 다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인연이 살아있다면 언제고 만날 것이다. 그러니 사는 동안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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