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C.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18세기 격동적인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 두 도시에서 대립적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인간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과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토요일 한 일간지 같은 면에 서로 대립적인 두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믿고 선전하며 전도하는 종교인으로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에 대한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부패와 혼돈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정치계를 살다간 고 노회찬 국회의원에 대한 기사이다.

설정 총무원장에 대한 기사는 취임 전부터 그리고 한 방송사의 고발 프로에서 학력 위조, 은처자 의혹, 사유재산 은닉의 3가지 의혹이 제기된 뒤에 지금까지 의혹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 없다가 여론과 종단의 압력이 수그러들지 않자 곧 진퇴를 결정할 것이라는 기사이다.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자신이 결정하기보다는 중앙종회 의장단의 결정을 따른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가 있는 조계종에는 퇴진을 요구하는 단식장에서부터 이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높다. 그 목소리는 부처님의 도량에서 있어서 안 될 목소리들이다.

한편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기사는 진보정치의 험준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귀한 목숨과 바꾼 것을 아쉬워하는 기사이다. 그가 떠나가는 길에는 국회 청소노동자가 함께했고, 이 땅에 힘없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슬퍼했다.

한 사람은 마음을 비우라고 외치면서 마음을 채웠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을 채우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마음을 비웠다. 한 사람은 명예와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사람이지만 명예와 신뢰를 버렸고, 한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신념으로 지키고자 했다. 한 사람은 삶을 초월하고 가진 것을 버리면서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남이 결정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스스로 결정해 이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속인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의혹에 대해 참회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참회의 말 한마디로 많은 사람이 같이 괴로워했을 일을 유서로 모든 것을 혼자서 안고 같다. 이러한 이야기에는 편견이 있다. 하나는 절의 재물과 사무를 처리하는 사판승(事判僧)에게 수도에만 전념하는 이판승(理判僧)이 돼야 한다는 편견이고, 사판승 같은 정치판에서 이판승처럼 정치해야 한다는 편견이다. 그러나 이 편견처럼 살다간 한 정치인이 더운 여름 우리의 가슴을 저미고 저리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 도시에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 다른 한 사람은 책임을 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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