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학현에 가는 길에 저승골까지 들려 남희춘에게 부탁한 백탄 스무 섬도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박왕발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현 배창령 임방주가 이미 북진본방에 산나물을 입고시키기 시작했고, 저승골 백탄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다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형님, 수산장 패거리들을 몽땅 꿇려놨습니다!”

최풍원이 박왕발이에게 그간 북진본방에서 생겨난 일들을 듣고 있을 때 동몽회 대방 도식이가 와서 싸움판이 모두 정리되었음을 알렸다.

“오늘 너희가 아니면 큰 낭패를 당할 뻔 했구나. 모두들 고생했다!”

최풍원이 수하들에게 치사를 했다.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앞으로 나섰다. 주막집 앞 한길가 공터에는 수산장 패거리들이 모두 끌려와 있었다.

“나는 북진본방 대주 최풍원이다! 대방은 누구냐?”

최풍원이 꿇려져있는 수산장 패거리들을 향해 호령했다.

“기춘이외다.”

수산장 우두머리 이름은 기춘이었다.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기춘이는 우두머리답게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수산장 대방임을 스스로 밝혔다.

“당신은 무슨 연유로 장꾼들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오?”

최풍원이 기춘이를 대접하느라 하오를 했다.

“우리한테는 그럴 권한이 있소!”

기춘이가 당당하게 맞섰다.

“무슨 권한이란 말이오? 당신은 청풍도가 운운하면서 그걸 권한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이오!”

“근거가 없는 일이라 말하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수산장에 내려오는 관행이요!”

“정주 장사꾼이 제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행상들 물건을 이리저리 하는 것은 예전에나 있던 일이오! 이미 언제 없어진 관례를 아직도 붙잡고 있단 말이오?”

“난, 그런 건 모르오! 우리 수산장 장사꾼들이 청풍도가에 장세를 내고 도급을 받아 그 일을 해온지 수 십년이유. 이제껏 아무 일 없이 잘해먹고 살아왔는데, 당신들이 무슨 이유로 이래라저래라 문제를 일으키는 거요?”

기춘이가 최풍원에게 항의를 했다.

“일단은 당신들 수산장 패거리들이 완력으로 우리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니 우리는 우리 물건을 지키기 위해 그리 한 것이고, 둘째는 당신들 하는 일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오. 장사꾼이 누구 덕에 산다고 생각하시오?”

최풍원이 기춘이에게 물었다.

“누구 덕은 누구 덕이유? 내 장사 내가 해서 먹고 살지!”

“그게 아니오! 장사꾼이 하는 일도 없이 남의 돈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장꾼들 덕이오. 그들이 수산장에 오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먹고 살 수 있겠소. 그런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등 처먹는 게 장사꾼이오? 그건 장사꾼이 아니라 도적이오!”

“도적이라구!”

기춘이가 최풍원의 도적이란 말에 발끈했다.

“어찌 보면 도적보다 더 악랄한 짓이오. 도적은 모르는 사람들 봇짐이나 빼앗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을 도와주는 장꾼들을 등처먹었으니 배은망덕한 일 아니오? 개도 저를 위해주면 물지 않는 법인데 개만도 못한 짓거리요!”

최풍원이 기춘이를 대차게 밀어붙였다.

“우리가 개만도 못하단 말이요?”

“세상에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오. 당신네 수산장 패거리들이 개보다 나은 게 뭐가 있소? 만약 앞으로 또 우리 북진본방이나 임방 장사꾼들에게 해를 입히려든다면 그때는 당신 패거리들 종자까지 파버릴 것이오!”

최풍원의 독설과 엄포에 기춘이가 말문을 닫았다. 수산장 패거리가 직수굿해지자 최풍원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처럼 천한 장사꾼들이 서로를 위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살펴줄 사람이 있겠소. 그런데도 서로 뜯어먹지 못해 안달들을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그러니 맨날 양반들한테, 있는 것들한테 이용만 당하며 천것들 취급을 받으며 이렇게 사는 것이오. 왜 우리끼리 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살아야 하오. 왜 양반들이 원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우리끼리는 뜯어먹지 못해 야단들이오. 저들은 지들이 필요할 때마다 마소처럼 부려 쓰면서, 우리가 죽을 만큼이나 배가 고파 비명을 질러도 언제 저들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밥 한 사발 건네준 일 있소. 그런데도 뭣 때문에 저들에게 굽실거리며 종살이를 한단 말이오. 그게 다 종 근성이 남아있어 그런 것이오!”

최풍원이 일장 연설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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