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균  < 논설실장 >

술꾼들이야 굳이 연말이 아닌들 핑계가 없을까마는 연말로 다가갈수록 술 마실 일이 늘어난다.

학교 동창회는 다른 모임들을 배려해 11월말께부터 12월초쯤까지 서둘러 연례행사를 마치고, 동호인을 비롯한 사적관계의 모임들은 주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열린다. 평일 저녁은 틈새를 이용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요즘에는 초상집이 많아 술 냄새 맡을 일이 잦다. 연세 드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술 마신 다음날의 후유증이 적지 않다.

술도 체력대로 마신다. 청년 시절 어른들께서 ‘나이 들어서도 술을 마시려면 젊었을 때 조금씩 마셔라’던 말씀이 생각난다.

원래부터 주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술자리를 피하지 않다 보니 ‘술 좀 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런 평가는 우리 사회에서 칭찬도 되고 흉도 된다.

술 많이 마셔  몸 버리고, 실수하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꽤나 많은 현실과 술을 통해 사회를 읽고, 예술을 느끼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버릇이 혼재된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술 잘한다’는 칭찬이거나 흉

최근 매우 즐거운 술자리가 있었다. 군대 동기들이 청주를 다녀갔다. 유신 말기인 1979년 3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던 우리는 제대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다.

동기 두 명이 2년 전에도 청주에 왔었다. 그들은 청주 무심천의 여름밤과 정취, 속리산 산세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고, 법주사 스님들이 드리는 저녁 예불의 장엄함에 마침내 넋을 잃었다.

바닷가인 경남 통영에 살아 생선회에는 능숙한 그들은 속리산의 송이백숙과 보은군의 특산주인 송로주(松露酒)는 감당하기 어려운 황홀한 맛이었노라고 실토했다.

해마다 오라는 재촉을 몇 번씩 어긴 뒤에야 지난 주 청주를 방문한 그들이 맨 처음 던진 질문은 신행정수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신행정수도의 필요성도, 충청도민들의 분노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대선 공약일 뿐인데 뭘 그리 목을 매냐는 투였다.

군에 입대한지 25년 된 ‘전우’와 신행정수도를 놓고 전투를 벌이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한 동기 녀석의 ‘임마들아 술이나 마셔라’는 호통에 우리는 이내 25년 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얼굴 새까맣게 탄 채 연병장 기어다니고, 조교들에게 두들겨 맞던 이야기며, 자대 배치 받아 치른 신고식이며, 밤마다 고참들에게 구타당해야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던 이야기, 그래도 우리는 졸병들에게 최대한 잘해줬다는 등 때로는 말 되고, 가끔씩은 말 안되는 대화들로 술잔을 꺾어 나갔다.

다음날 청주의 통과의례인 해장국집을 거쳐 속리산으로 이동한 동기들은 다시 찾은 초겨울 속리산을 마치 애인 만난 듯 쓰다듬고, 껴안고, 호흡했다.

괴산 청결고춧가루를 받아든 동기들은 “통영가믄 청주 자랑 억수로 할끼다”며 떠났다. 다음에 내가 통영 내려가면 매물도와 생선회로 통영의 진수를 보여 주겠노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나라꼴 핑계대고

통영에 도착한 다음날 전화를 건 동기가 “친구야, 청주에서 맹코로 술을 마시면 내 죽어삣을 낀데 아직도 살아있다 안 하나”할 때까지 우리가 마신 주량을 정확히 몰랐다.

술에 기대 이성을 마비시키는 부류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기 확인일 수 있다.

술 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는 해명은 혼자이지 않다는 자위를 할 때 요긴하다.
이제는 술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실존적으로 한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우리집으로 모신 노모께서 아침마다 술 걱정하시는 모습이 죄스럽다. 평생 자식들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어머니께서 늙은 얼굴과 몸으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 괴롭다.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이 부른 국악가요 중에 ‘꽃분네야’가 있다. 너무 슬퍼 자주 부르지 않으려 하는데 요즘 종종 흥얼거린다.

‘꽃분네야, 꽃분네야, 너 어디를 울며가니? 우리 엄마 산소 옆에 젖 먹으러 가는 간다~’ 나라 돌아가는 꼴과 어머니 핑계대며 아무래도 오늘도 술 한잔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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