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농막에 설치한 화덕 앞에 앉아 장작불을 때서 잘 익은 옥수수를 삶고 있다. 그 모습에서 옛날 소죽을 끓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림 되어 나타난다. 옥수수 삶는 냄새가 소죽 끓이는 냄새와 비슷하다. 얼마 후 잘 삶아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옥수수를 쟁반에 담아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할아버지는 사랑채의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소죽을 끓이셨다. 볏짚 썰고 들에서 갓 베어온 풀과 호밀가루를 섞어 넣은 후 구정물을 붓고 냄새도 구수한 소죽을 끓여 아침, 저녁으로 소에게 먹였다. 할아버지의 겨울철 하루 일과가 나무 해오고 소에게 죽을 끓여 먹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소죽을 끓이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둘러앉아 할아버지가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소죽을 퍼 주는 동안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줄 고구마를 굽고 계셨기 때문이다.

양재기에 군고구마를 담아들고 할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받아들고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며 먹기 시작한다.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고구마를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얼른 또 하나를 집어 든다. 늦으면 차례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할아버지는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뻘건 장작불을 보면 군고구마와 구운 감자, 구운 옥수수가 생각난다. 아내가 잘 삶아진 옥수수를 쟁반 가득 들고 와 먹자고 한다. 벌써 구수한 옥수수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옛날 할아버지의 냄새다. 아니 어쩜 소죽의 냄새일지 모른다. 경쟁하던 동생들은 없지만 한 개의 옥수수라도 더 먹으려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먹는다. 맛을 음미해가며 천천히 먹어도 되는데 누가 빼앗아 먹을세라 허겁지겁 먹기만 한다. 한참을 그렇게 먹다가 옆의 아내를 흘끔 쳐다보니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옛날 할아버지가 우리들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림 그 자체다. 공연이 쑥스러워 히죽 웃었다.

먹을 게 귀했던 그 시절의 그 맛은 아니지만 아내가 불 지펴서 삶아준 오늘의 옥수수도 맛있다. 지난 세월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라 더욱 맛있다. 화덕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만 보아도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화덕의 맛인지 장작불 맛인지 아니면 지난 세월의 맛인지 구수함이 전해지는 달달한 맛이다.

옥수수를 먹다보니  숯불이 빨갛다. 생 옥수수를 집어 들고 달려가 숯불 속에 묻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옛날 아궁이에서 들려오는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전해진다. 그 냄새속에서 할아버지의 향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화덕 앞에서 불을 때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어린 시절 정겨움이 떠올려지는 맛을 보았다.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늘 곁에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가족들의 모습이다. 다시는 그려낼 수 없는 추억 속에 피어나는 가족의 그림이다. 추억을 먹고 살 수는 없지만 추억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가족의 그림 속으로 여행을 즐겨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