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인 23일 폭염의 기세가 등등한데,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길만한 두 거목(巨木)이 세상을 떠났다. 소설 ‘광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최인훈이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발발로 월남한 최인훈 작가는 지난 3월 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기념비적 소설로 일컬어지는 ‘광장’은 남북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인 만큼, 최근 일고 있는 남북평화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광장’은 남북 간의 이념과 체제에 냉철한 균형감각을 견지하면서 치열한 성찰을 보여주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천착하는 결말로 독자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또 삶의 일회성에 대한 인식이나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인간 자유의 문제와 사랑과 같은 본질을 다뤄 세월이 흘러도 젊은이들에게 늘 추앙받았다. 특히 소설의 열린 구조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무수한 비평가와 독자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출간 직후 현재까지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을 보유했다.

문단에서 최인훈 작가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평생 동안 문학에만 몰두해 다채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 평론, 에세이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의 테두리를 확장시켜 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한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한국문학의 거목(巨木)이었다. 수많은 작품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읽히며 후배 문인과 젊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우리 정치 현대사에 노동자를 귀하게 여기는 진보 정당의 희망을 세워 놓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숨을 거둬 충격을 주고 있다. 노 원내대표는 인터넷 댓글 조작을 수사하던 드루킹 특검팀에 의해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드러나자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검은 금품이 전달된 것 자체를 입증할 수 있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고 거듭된 언론의 의혹 보도가 이어지자 노 원내대표의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일부 수사를 통해 드러난 드루킹은 전형적인 정치 브로커라고 할 수 있다. 후원금 명목으로 정치인들에게 돈을 전달하고 그것을 미끼로 인사 청탁 등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곧바로 후원금 지급 내역을 폭로하는 방식이다.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은 드루킹을 중심으로 한 정치 브로커들의 면면이다.

정치 브로커에 연루된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불명예스러운 것은 맞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피치 못한 괴오를 저질렀다면 국민 앞에 사죄하고 벌을 받는 정면 돌파의 방식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 현대 민주주의 정치사에서 노 원내 대표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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