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졌던 개헌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신임 문희상 국회의장이 연내 개헌 의지를 밝히면서다.

문 의장은 18일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의 연내 추진과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 의장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촛불혁명이 됐는데, 최후의 제도적 보완이자 완성은 개헌"이라며 “개헌안이 연내에 도출될 수 있도록 교섭단체 대표들을 자주 만나겠다"고 말했다. 앞서 문희상 의장은 전날(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도 연내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개헌론 재점화는 의미가 작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폐기되면서 사실상 이 정부에서의 개헌은 물 건너 간 듯이 보였다. 그런데 문 의장이 불씨를 되살림으로써 개헌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개헌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각 정당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일삼아왔다. 6·13 지방선거 동시 개헌은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모두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막상 개헌 논의에 들어가면 당리당략으로 무산시켰다. 국민의 80%가 원하는 개헌임에도 대의기관의 의무를 저버린 국회의원들의 후안무치를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일단 지금까지 개헌에 딴지를 일삼던 자유한국당이 호응하고 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의 손익계산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호재인 것은 사실이다. 다른 야당들도 문 의장의 제안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개헌에 탄력을 붙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제는 여당이다.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개헌에 미온적인 한국당을 압박하던 민주당이 이젠 소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지방선거 승리 이후 입장이 바뀐 탓이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금 정국은 경제와 민생에 대한 입법들이 중요해지는 시기”라며 “개헌은 민생 입법들을 젖혀버릴 수 있는 하나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고 현 시점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개헌의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 1987년 개헌 이후 31년간 유지되고 있는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나 권력 분산이 시급하다. 국민소환제 도입을 통한 국회 견제도 절실하다. 또 인권, 지방분권 강화 등 시대 변화에 따른 요구를 충족하기에도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는 18일 개헌과 관련해 “개헌 논의는 국회가 주도적으로 할 일이고, 청와대가 현재로써 관여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꼭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국회가 개헌을 주도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청와대가 손을 놓으면 개헌 동력을 살리기 어렵다. 자칫 차기 정권 재창출을 염두에 두고 현행 헌법을 존속시키고 싶어 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개헌에 미적대지 말고 국민의 염원을 되새기길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