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서기] 남편은 적응 중이다
[물구나무 서기] 남편은 적응 중이다
  • 충청매일
  • 승인 2018.07.1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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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숙 수필가

 

빵집이 없어졌어. 남편이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동네를 환하게 밝혀주던 ‘파리바게뜨’ 빵집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단다. 며칠 전에 떨이로 묶은 빵을 당신이 사 들고 오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찾아보라 했다. 글쎄, 몇 번을 훑어보아도 뵈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전화기 너머 남편의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렸다.

십여 년 전 버스 정류장 근처 상가를 차지한 이래 동네 빵집을 하나하나 문 닫게 했던 그 위세가 마침내 꺾였단 말인가? 그때였다. 따르릉∼ 숨 가쁘게 전화가 다시 울렸다. 드디어 빵집을 찾았단다. 빵집은 예의 그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어두운 유리 벽 때문에 간판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 생일 초대에 가져갈 ‘조그만 케이크’가 아주 많다며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였다.

불황으로 폐업했나 보네 어쩌네 하며 안타까워하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나왔다. 전에 같으면 아내의 불평을 귀에 담지 않았을 그였다. 미리 좀 사다 놓지 그랬냐는 잔소리를 예상하던 나는 그이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빵집을 찾아낸 게 여간 신통하고 대견스럽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한 걸음씩 적응해 나가는 거지 뭐! 요즘은 퇴직을 앞둔 공무원, 군인, 회사원 등이 자립을 위해 일정 기간 교육받는다 하지 않는가.

그이는 지난 연말, 운영하던 디자인 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격무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소년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하루하루 신세계가 펼쳐졌다.

퇴직 다음 날부터 그는 집안의 심부름을 자청했다. 하지만 그의 신나는 표정과는 달리 차라리 아니함만 못했다. 길쭉하고 날씬한 오이를 사 오라 시키면 퉁퉁한 오이를 사 오기 일쑤였다. 뭐라 나무라면 그렇게 생긴 오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단다. 그 마켓의 자랑인 오이가 그이만 가면 왜 매번 자취를 감추는 걸까? 또, 포도 심부름시키면 한물간 물컹한 포도를 집어왔다. 어쩐지 싸드라 하며 멋쩍어했다. 요구르트 덤에 넘어가 유통기한이 다 된 우유를 사 오기도 하였다. 그는 세 가지 이상의 심부름은 늘 벅차했다. 그러면서도 담배, 로또 복권은 잊지 않았다.

은행 CD기는 그에겐 무용지물이다. 현금 찾는 것만 배우라 해도 시도도 해보기 전에 난색을 보이며 손사래 치곤 했다. 요즘 세상에 남편 같은 기계치가 또 있을까? 주민센터의 위치를 몇 번이나 일러주었는데 여전히 헷갈린다. 그냥 하던 대로 내가 다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얼마큼 가르쳐주어야 할까?

한 번은 모임 때문에 바깥에 있는데 큰일 났다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큰일? TV가 안 켜진단다. 고작 TV 못 보게 되었다고 모처럼 외출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 호들갑이라니! 순간 괘씸했지만 참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 했다. 여전히 작동이 안 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무래도 TV가 고물이어서 고장 난 것 같단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또 시작이었다. 내가 돌아와 리모컨으로 TV를 소생시킬 때까지 그는 컴컴한 화면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남편의 서툰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냉장고를 연 그는 한참을 그냥 서 있곤 한다. 원하는 반찬을 찾을 수 없단다. 뻔히 보이는 데도 왜 매번 없다고 하는지 미스터리다. 세탁기도 쓸 줄 모른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외국 여행 갔을 때 세탁기 작동순서를 다시 알려달라고 버튼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친구들이 아연실색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니 세탁물은 세탁기 속에서 푹푹 쉰내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사용한 컵들이 여행 날짜만큼이나 싱크대에 쌓여 있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가전제품 작동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어도 매번 처음 본단다. 모르면 가만히 나 있지 온갖 버튼을 다 만져서 고장 내거나 다시 입력하게 했다. 핸드폰은 이것저것 다 눌러대어 스팸이 무성하다. 아휴 이거 이제 바꿔야지, 못 쓰겠어 하며 자기 탓 대신 기계 탓을 해댄다. 무엇하나 찾으려면 급한 성질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온 집을 들쑤시기 일쑤다. 못질 한 번 하려면 펜치, 망치, 전동드라이버, 의자, 걸레까지 불려 나와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의 ‘적응’을 위해 터지는 속을 참고 또 참는다. 다행히 요즘에는 음식을 덥혀주는 전자레인지 작동만은 무난히 잘 해내는 편이어서 나의 외출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의 손발은 너무 오랫동안 생업에 묶여 있었다. 일에서 놓여난 그는 무사히 집에 돌아와 내 곁에서 안식을 누리는 중이다. 순간순간 그에게 감사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놓여난 그의 뒷모습이 때론 쓸쓸해 보여 마음이 애잔해지는 때도 있다. 날카로웠던 시선 대신 부드러운 눈매로 변해가는 그가 낯설다. 자잘한 일상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한편 안쓰러우면서도 눈물겹다.

아들네 집 앞에서 그이를 기다렸다. 그는 비닐에 쌓인 케이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왔다. 당신이 말한 ‘조그만 케이크’ 여기 있소. 하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딱 커피잔만 한 크기였다. 이게 케이크에요? 뭐가 이렇게 작아? 당신이 ‘조그만 케이크’ 사 오랬잖아. 그래서 이게 딱 맞다 싶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나? 세상에나,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명색이 생일 케이큰데! 먹을 것도 많은데 이거면 됐지. 앙증맞고 얼마나 예뻐! 당황해서 오히려 큰소리치는 남편을 바라보다 나도, 마중 나온 아들, 며느리도 웃음보가 터졌다. 그도 얼굴을 붉히며 따라 웃는다.

갈 길은 아직 멀다. 남편은 아직 적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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