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이사님! 군산은 처음이신가요?”

“외가 곳이라고는 하는데 전혀 기억에 없어요.”

탁 자금담당 이사의 머리에는 철길이 아슴푸레하게 떠올랐다간 사라지곤 했다.

“어머! 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는 이 경암동이 번화가였어요.”

“그래요?”

“네.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하시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바람에 엄마가 힘들게 우리를 키우셨어요. 그래서 이곳 군산에 올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해주씨가 자라던 20여 년 전만해도 이 경암동 철길마을엔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교복 대여점, 옛날식 다방, 연탄구이 가게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썰렁하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많은 근로자가 떠나고 있다고 해요. 정부에서 군산을 살릴 특별한 방법 같은 것을 내놓으면 좋을 텐데요.”

“이사님! 잠깐만요.”

홍보·영상 담당 직원이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이대자 탁 이사는 멋쩍은 듯 가던 길을 멈춰서는 듯했으나 발랄하기 그지없는 해주씨는 살짝 멈춰서며 싱긋 미소 짓는 모습이 5월의 장미꽃만큼이나 청순하고 예쁘다.

그때 여고 검정교복을 입은 50대로 보이는 여성 대여섯 명이 앞서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지나간 세월이 아쉬운 듯 손에 손을 잡고 있다. 한 여성의 왼쪽 팔뚝에는 ‘규율 반장’ 완장을 찬 모습도 보였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연신 ‘호호’ ‘깔깔’ 웃는 소리가 얼마만큼 뒤떨어져 가는 탁 이사의 귀에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탁영특 자금담당 이사, 그는 소리소문없이 국내 굴지의 기업! 그것도 최고의 엘리트만 뽑는다는 22세기조선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이다. 흔히 낙하산 인사하면 나이가 지긋하거나 정·관계에서 물러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쉰이 갓 넘어 보였다.

회장은 이번에도 주주나 중역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인사를 단행해 적잖은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회장은 새로 오는 탁 자금담당 이사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았다. 그는 총무부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이력을 대신했다.

“나는 이 조선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일세. 내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을 데려오겠나?”

하긴 그랬다. 22세기조선의 진 회장은 특이했다. 한때는 권력의 실세가 사돈을 맺자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아 온 장안에 화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IMF 사태 때는 회사가 부도에 처할 위기도 있었다. 그렇게 되자 모든 어음이 막히고 신용이 하락하여 외국에서 발주하는 입찰에 참여하지 못 하는 일이 생겼다. 그 일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권력의 실세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 그 일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진 회장뿐이다. 눈치로, 어림짐작으로 그랬을 것이란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 그런 회장의 권위에 맞서 이번 인사가 부당하다고 나설 간 큰 임원이나 직원은 회사에 없었다.

탁 이사 비서로 발령을 받은 해주씨는 자기가 모셔야 할 상관에 대한 기본 정보, 즉 학력이나 식습관, 취미활동 등을 알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안달복달했으나 미국에서 성장했다는 것 말고는 알아낼 수 없는 의문투성이 인물이었다.

“해주씨가 살던 집은 어디쯤인가요?”

“저 철길 너머 빈촌이었어요. 지금은 엄마도 돌아가시고 아무도 안 계세요.”

“그래요. 해주씨도 엄청 어렵게 성장했군요. 그래도 올곧은 심성을 가졌으니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이사님! 고맙습니다. 이제 말씀 좀 낮춰주세요. 민망스러워요.”

“아! 그래요. 습관이 돼서.”

탁 이사가 부임한 지 석 달이 되어가지만, 아래 직원에게 반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더구나 수족같이 따르는 자신에게도 꼭 존댓말을 쓰는 그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말을 낮출 것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대답만 해놓고서는 여전했다. 특히 여러 직원이 있는 데서는 마치 동료처럼 대하는 탁 이사가 무섭기도 했다. 마치 자신의 보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리감을 두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탁 이사는 업무 외에는 일체 다른 일을 시키거나 부탁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군산행을 미리 알았다면 장거리 여행에 편한 옷을 입었을 것이지만, 탁 이사는 아침에 군산 공장에 갈 일이 있으니 준비하라고만 일렀다. 22세기조선소 공장을 시찰하고 시간이 조금 남은 듯하자 예정에 없던 경암동 철길마을을 둘러보자고 했다.

군산 공장 방문은 폐업을 거듭하고 있는 조선 산업과 큐엠 한국자동차 공장의 사활문제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회장의 지시였지만 단 시일에 수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마음은 더욱 복잡했다. 경암동 철길 위를 천천히 걷는 탁 이사의 가슴엔 만감이 교차했다.

조선 산업이 번창할 때 술집 종업원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신을 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낯선 땅 미국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든 꿈이 좌절되자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가 된 어머니는 외로운 땅 이역만리에 자신만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어린 나이에도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어야만 했다. 성장해서 한국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군산을 찾았었다. 하지만 30여년 만에 돌아온 군산은 몰라보게 변했고 더구나 자신이 태어났다는 경암동 철길마을은 그 옛날의 이야기를 하나도 들려주지 않았다.

“해주씨! 저기 검정 교복 입고 사진 한 장 찍으면 어떨까요?”

“네. 이사님도 옛날 추억이 떠오르시나 보죠? 저도 오랜만에 교복 입어보고 싶었어요.”

해주씨가 검정 교복을 빌려와 탁 이사에게 입히고 모자를 씌우자 근엄하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열 칠팔 세 활기 넘치는 고등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그 옆에 해주씨도 하얀 컬러의 검정 교복으로 갈아입고 그의 팔뚝을 끼고 섰다. 마치 부녀같이 보였다.

때마침 다큐멘터리 방송을 찍던 미국의 kcn 방송사 기자가 그곳을 지나다 말고 그 다정한 모습을 보고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특종을 낚은 표정이다.

“독학으로 성공한 재무 컨설팅의 귀재! 탁영특 박사가 달나라로 올라가 또 엉뚱한 일을 하는 줄 알았더니 한국의 군산에서 포착되었군요. 그는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지요. 이제 군산에도 새 바람이 불어와 조선업계와 자동차업계를 되살릴 게 분명합니다.”

앵커의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TV 화면에는 탁영특 자금담당 이사와 해주씨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미국 전역에 전파를 타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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