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오늘부터 장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무심천 벚꽃이 만발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때가 어제 일 같은데,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집을 나서면서 우산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아, 우산도 없이 저 빗속을 걸어가야 하는구나. 우산도 없이 긴 장마 속을 걸어가는 이는 어떤 기분일까. 집을 나서며 우리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생각났다.

청주·청원이 통합되면서 미원, 내수 등 오일장이 서는 구 청원지역을 찾아가 작은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청주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가 주축이 되어 오일장 상인과 고객을 위한 공연을 마련했다. 처음 의도와 달리 공연 장소도 마땅치 않고 오일장 규모도 작고 고객도 많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호응도 많지 않고, 트로트에 익숙한 이들에게 풍물이나 국악, 춤, 마당극 등의 공연이 마땅찮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전공도 아닌 트로트나 각설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음향과 조명이 갖춰진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노래하고 연기해야 할 예술가들이 휑한 시장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마음이 편치만도 않다. 더구나 상인이나 주변 주민의 민원이 있을 때면 속이 배로 상한다. 어느 때는 음향과 무대를 여러 번이나 옮겨야 했고, 전기가 없어 구걸해야 하기도 했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고객의 시선을 이겨내야 했다. 그래도 예술인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3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전화를 받고는 나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상인이 공연을 못 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수도 못 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웬만하면 흥분하지 않는 내가 아버지뻘 되는 분에게 소리를 치며 따졌다. 심장은 콩닥거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중에 그분의 사정을 듣고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자식 같은 연주자들에게 자기 화풀이하는 일은 옳지 않았다. 

‘지역에 젊은 예술가들이 없다. 볼만한 공연이 없다. 문화예술의 불모지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뮤지컬이나 대중가수 공연 등에나 관심이 있을 뿐,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예술인에겐 관심이 없다. 이는 관이 추진하는 행사에 지역 예술인을 섭외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몇백, 몇천을 주더라고 인지도 있고 그래서 관객이 동원될 수 있는 공연을 선호한다. 숫자가 중요한 경우이다.

정말 청주에는 예술가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청주민예총만 보더라도 씨알누리, 울림, 예술공장 두레, 극단 새벽, 전통연희단 마중물, 국악관현악단 더불어숲, 가야금앙상블 슬, 음악그룹 여음, 나우뮤직, 나비야, 민족춤패 너울 등 30년이 넘은 단체에서부터 젊은 예술가들의 신생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야 하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길을 걷고 있다. 그럼에도 긴 장마 속을 걸어가야 할 모든 예술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내리고, 춥다가 덥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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