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다시 유월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선물을 기다리며 대문 앞을 서성이던 어머니의 기다림처럼 이른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통장님이다. 통장의 손에는 쓰레기봉투가 들려있었다. 매년 6월 25일이 가까워지면 국가 유공자들한테 작은 선물을 주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쓰레기봉투를 갖다 주신다. 봉투를 받아 들고 나니 작년 봄 떠나신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버님이 국가 유공자이셔서 우리 집에는 접시나 그릇 종류가 한 세트씩 들어왔다. 어머니는 새 물건이 들어오면 바로 장롱에 갖다 넣었다. 안방 장롱 서랍에는 마치 상품을 진열이라도 하듯 물건이 쌓여갔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어머니 생신상을 차리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부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옹색했다. 찬장에는 오래되어 이가 빠진 사기그릇과 스테인리스 공기가 놓여있었다. 내 딴에는 마음먹고 솜씨 부려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릇이 변변찮으니 기운이 빠졌다. 찬장을 뒤지며 안절부절못하는 나한테 남편은 안방 서랍에 있는 그릇을 가져다 쓰라고 했다.

서랍에는 예쁘고 고급스러운 접시와 그릇이 꽤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그릇을 꺼내 그럴듯한 상을 차렸다. 생신상을 보신 어머니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말씀은 안 하셔도 왜 새 그릇을 사용했느냐는 언짢은 마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날 이후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어머니는 서랍 속 그릇을 종종 도둑맞았다. 요리하기 좋아하는 내가 어머니의 새 그릇을 탐내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의 심기가 불편해지셨다.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가 당신 살림을 마음대로 꺼내 쓰는 것이 마땅찮아서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영락없이 헌 그릇이 찬장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와 나의 그릇 숨기기 숨바꼭질은 10여 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머니의 서랍에는 그릇 말고도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내가 사다 드린 시계가 서너 개나 됐다. 립스틱이나 로션을 사 드리면 아까워 바르지 못하고 서랍에서 유통기간을 다 넘겼다.

검소함이 몸에 밴 어머님은 사시는 동안 당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밖에 하지 않으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허름한 삼베 옷 한 벌이 고작이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꽃무늬 몸빼바지밖에 기억나는 옷이 없다. 평생을 몸빼바지와 자식들이 입다 둔 유행 지난 추리닝만 입고 다니셔서인지 새 옷을 사드리면 그대로 서랍으로 들어갔다.

어머님 성격을 알기에 남편과 나는 한 번씩 집안을 뒤집었다. 서랍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상한 화장품과 누렇게 색이 바래 입을 수 없는 옷도 정리했다. 재활용 통에 넣으면 다시 주워 오시는 어머니 때문에 아예 멀리 내다 버렸다.

한 번은 부엌 정리를 하다가 들기름을 세 병이나 치웠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때 짠 기름이니 어림잡아도 10년은 지났을 텐데, 아끼다가 싱크대 수납장에 넣어 두신 것이다. 찌들고 상해서 기름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향도 나지 않았다. 그 일로 어머니가 어찌나 역정을 내시던지. 얼른 가서 다시 주워 오라고 하는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혼이 났었다.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 말고는 손을 대지 못하는 서랍이 아버님 돌아가시고 유품정리를 하는 날 비로소 입을 뗐다. 장롱 서랍에는 아버님의 새 옷도 많았다. 그렇게 넣어두고 평소엔 해진 셔츠와 헌 양말, 양복도 늘 입으시는 것밖에 안 입으셨으니. 한 번도 입지 않은 셔츠와 속옷들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장롱에서 조용히 주인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스승의 날에 제자들에게 받은 선물과 자식들이 사다 드린 옷, 서울 작은 아버님께서 새로 맞추어 주신 양복은 주인의 냄새도 맡아보지 못한 채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또, 한쪽 구석에는 금강제화 표가 붙은 구두 한 켤레가 역시 곽 속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병적일 만큼 새 물건에 집착하던 어머니가 노인병원에 계시던 11년 동안은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 푸르던 젊은 날의 기억들마저 차곡차곡 서랍에 넣어두고 그저 본능적인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사이 어머니의 서랍에는 하나둘 물건들이 쌓여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껴야 잘 산다고 하찮은 뒷목 한 알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던 어머님이 서랍에 두고 가신 물건들이 얼마나 못 미더우실까.

어머니의 서랍을 보며 생각한다. 어머니는 혹시, 매사에 잔사설 없이 속내를 봉합하고 사신 당신과 단단히 자신을 갈무리하는 서랍이 닮았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었을지. 평생을 잘나신 아버님 옆에서 덧니처럼 살아오신 당신의 헛헛한 마음을 서랍에 기댄 것은 아니었는지.

장롱 서랍을 열자 숨어있던 어머니 마음들이 서둘러 따라 나왔다. 접시, 치약, 속옷, 화장품 등, 주인 잃은 물건들이 많기도 했다. 언제 입으려고 하셨는지 고이 개켜 넣어둔 분홍색 스웨터는 예단처럼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했다. 신혼여행 길에 사다 드린 동전 지갑에는 10원짜리 동전도 한 움큼이나 들어있었다. 가시고 나니 그런 것들마저도 자식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유월이 되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유월의 장마 기간에는 밤이 더 길게 느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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