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형, 일단 약초를 사고 파는 문제는 나중에 좀 더 상의를 하고 바구니는 빨리 마무리 지어 주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남겨두고 갈 테니 다 만들어지거든 그 편에 보내주시오.”

“대주, 걱정 마시오! 하루 이틀이면 모두 끝날 것이오.”

“바구니를 가지고 나가다 김 판서 네와 부닥칠 일은 없겠소?”

“글쎄올시다. 하도 사사건건 거정을 피우니 뭐라 말하기 어렵구려. 별 일이야 있겠소?”

버들쟁이 구 씨도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김 판서네 일로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모처럼만에 구레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포식을 했다. 힘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앉는다고 뾰족한 해결책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자리에 모여 앉으니 서로 의지는 되었다. 그래서인지 장팔규는 자리가 파할 때가지 김 판서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게거품을 물었다. 그러다 김 판서 귀에라도 들어가면 애비 짝 난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입단속을 시켰지만 막무가내였다.

최풍원 일행은 이튿날 아침 느긋하게 덕산으로 갈 채비를 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환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구레골이 월악산 영봉 깊은 골짜기에 있어 해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아마도 산 아래 성질 급한 마을사람들은 밭에 나가 한참 일을 해놓았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구레골 사람들은 어젯밤 잔치에 곤해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인 버들쟁이 구 씨라도 어수선한 소리에 잠을 깰만한데 기척이 없었다.

“강수야, 누구를 남겨두고 가겠느냐?”

최풍원이 구레골에 누구를 남겨놓을 것인지 물었다.

“태식이에게 한 명만 더 붙여 놓을까 합니다만…….”

“둘로는 좀 그렇지 않겠느냐?”

최풍원이가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대주님, 염려 없습니다!”

“그럴까?”

“예!”

강수가 잘라 말했다. 최풍원도 구레골에 남겨둘 인원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동몽회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짐을 꾸려 마소에 실었다. 짐을 얼추 다 실어갈 즈음 버들쟁이 구 씨가 황급하게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어디를 그리 갔다 오시우?”

최풍원이 구 씨를 보자 반갑게 물었다.

“산 아래 창말을 갔다 옵니다!”

“식전부터 창말은 무슨 일로?”

“김 판서네 일해 주는 날이라 구레골 남정네들이 모두 내려갔는데…….”

버들쟁이 구 씨가 숨이 찬지 하던 말을 중도에 멈추었다.

“그런데 왜 혼자만 올라왔소?”

“지금 다들 올라오고 있다우.”

“무슨 일인데 거기까지 갔다가 일도 안 하고 다들 올라온단 말이오?”

“아무래도 지난 밤 김 판서네 집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 같소!”

“변고라면 김 판서가 죽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분명하오! 그렇지 않은데 집안 분위기가 쏴하고, 오늘은 일을 못한다며 우리를 다 보낼 리가 없지 않겠소!”

최풍원과 버들쟁이 구 씨가 김 판서네 집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몰라 설왕설래하고 있을 때 창말로 내려갔던 구레골 사람들이 한 무더기 올라왔다.

“김 판서네 집에 어제 불한당이 들었다는구먼!”

“불한당이라면 떼강도란 말이여? 내가 거기 일꾼들한테 듣기로는 복면을 한 강도라고 하던데.”

“불한당이든 강도든 뭔가 들은 건 틀림없구먼.”

“그래 뭘 훔쳐갔데?”

“재물을 훔쳐간 건 아니고, 김 판서를 어찌 했는데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김 판서가 넋이 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디야.”

“누가 그려?”

“그 집 행랑아범한테 들었구먼. 일꾼들도 서넛 당했다던데.”

“일꾼들은 왜?”

“김 판서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갔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디야. 얼마나 날랜지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일꾼들 대여섯을 순식간에 꼼짝도 못하게 마당에 눕혔다네. 어디를 어떻게 쳤는지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더리야. 달려왔던 일꾼들을 그리해놓고는 제 집처럼 김 판서 방으로 들어가더리야.”

“그래 어떻게 됐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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