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밭이었던 것도 아니고, 야산이나 다름없던 황무지를 마을사람들이 이제껏 살며 조금씩 개간해서 이뤄놓은 것을 이제와 느닷없이 땅주인이라고 나타나 소작료를 내라고 하니 황당할 만도 했다. 그래도 누구하나 김 판서네 한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씨네 재실을 헐어다 집을 짓고도 무사한 권세인데 괜히 잘못 대들었다가 눈밖에라도 나는 날이면 그 후한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이 개간한 땅도 아니고, 마을사람들 목숨줄이 걸려있는 그런 코딱지만한 땅을 가지고 뭔 소작료를 받는대요?”

“김 판서네 머슴들이 마을마다 돌아치며 전수 조사를 해갔던 건 그럴 속셈이었다오. 그뿐만이 아니었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사사건건 철철이 명목을 붙여 세를 내놓으라 하는 거요.”

“철철이 세는 어떻게 뜯어가는 거요?”

일년에 한 번 가을 추수가 끝나고 도지를 내면 부치는 것이 상례인데 철철이 소작료를 뜯어간다니 듣느니 금시초문이어서 최풍원이 물었다.

“오월 보리타작하면 보리세, 마늘 캐면 마늘세, 밀 거두면 밀세, 가을에 수수 거두면 수수세, 수숙 거두면 좁쌀세, 심는 것마다 와서 봐두었다가 추수 때 거둬가니 기껏 죽 쒀서 개 주는 꼴 아니고 뭐겠소!”

더구나 이제껏 내 땅이려니 생각하고 부치며 이것저것 심어 먹고 살던 사람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김판서네가 부리는 횡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철철이 나오는 작물마다 뜯어가던 땅세로도 모자라 종당에는 월악산에서 캐는 약초에도 세를 매겼다. 밭농사 반, 산 농사 반을 지어 겨우 살아가는 구레골 사람들에게 약초 세를 뜯어간다는 것은 그들의 목줄을 죄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밭농사로는 식량도 모자랐다. 모자라는 그만큼은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 그것을 팔아 돈을 만들어 메우며 겨우 살아왔다. 그런데 거기에다 또 세금을 매기니 구레골 사람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 같은 일이었다.

“저, 월악산이 김 판서네 산이 맞기는 한 거요?”

“그러니까 산지기까지 두고 세를 받아 챙기는 것 아니겠소?”

“산지기까지 두고 그리 한단 말이오?”

“산에서 마을로 통하는 길목마다 산지기들이 움막을 지어놓고 마을사람들이 걸머진 바랑을 일일이 뒤진다오.”

“그래서는 어떻게 하지요?”

“캔 약초의 반을 산지기한테 내놓든지, 아니면 약초 세 대신 김 판서네가 필요로 하는 날, 그 집 일을 대신 해줘야 움막을 통과할 수가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산에 올라갈 수도 없어요. 산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산을 올라가지 못하게 하면 굶어죽으란 말 아니겠소?”

“악랄하구려! 그래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는가요?”

“칼자루를 쥔 놈이 그놈들이니 어쩌겠소. 그나따나라도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당장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려우니 억울하지만 반을 덜어주더라도 그놈들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별 수 있겠소이까?”

버들쟁이 구 씨는 억울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세월이 참 지랄같이도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티끌만치라도 뭔가 나아지는 것이 있어야 살아갈 희망을 품는 것인데,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있는 놈들은 누워서 배만 두들기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고, 없는 놈들은 뼈가 닳도록 일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나아지기는커녕 외려 시간이 갈수록 고달퍼지기만 했다. 이런 세상을 더 살아봐야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사는 것이 너무나 고달프고 재미가 없어 죽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샘솟듯 해도 그리 할 수는 없었다. 죽어버리면 만고 편할 일이었지만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어린 것들을 생각하면 그건 지옥불에 떨어질 일이었다. 그러니 더럽고 억울하고 지랄같아도 참고 사는 길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게 힘없고 돈 없는 무지렁이들의 타고난 운명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놀면서 편하게 먹고사는 팔자는 김 판서네 같은 양반들뿐이었다.

“관아에는 고변은 해보았소이까?”

“고변이오! 배나 꺼지지 그깟 걸 뭣 하러 한답디까.”

최풍원의 물음에 버들쟁이 구 씨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왜요?”

“관아에 가나 안가나 뻔한 대답을 알고 있는데, 뭣 하러 헛걸음을 한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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