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어쩠기에 거슬릴 수 없단 말이오?”

“자기네 땅이라고 땅세를 내라 하니 낼 수밖에 더 있겠소?”

“남 땅을 부치면 당연한 것 아니오?”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뭐가 문제요?”

“저 아래 창말 전답이라면 지금까지 마을사람들이 소작료를 내고 소작을 부쳐왔으니 누가 뭐라 하겠소. 문제는 김 판서네가 창말로 낙향해오면서요!”

“판서는 무슨 판서, 개판서지! 아무리 몰락했다 해도 판서나 했던 집안이 이런 고랑탱이까지 뭣 하러 내려온 대유?”

젊은축은 창말에 산다는 김 판서 집에 단단히 원한을 품고 있었다.

“개판서는 또 무슨?”

“돈을 주고 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짓이 하도 못되먹어서 인근에서 부르는 소리라오.”

“아무리 그래도 개판서가 뭐요, 개판서가!”

“대주도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나면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갈 거요!”

버들쟁이 구 씨가 그동안 있었던 김 판서네 내력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동창이 있는 아래 창말로 김 판서 네가 들어온 것은 서너 해 전이었다. 김 판서네와 창말이 어떤 연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변 때 피난을 왔다가 주저앉아 어느새 십여 대가 넘게 살아온 토박이 노인들도 선대로부터 김 판서네 조상이 창말에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김 판서네가 창말에 들어와 처음으로 한 일은 남의 집안 재실을 헐어다 집을 짓는 일이었다.

창말에서 두서너 마장쯤 송계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절골을 지나 사장 동쪽 골짜기에 골미실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호사가 양반님 네들이나 하는 짓거리라 백성들이야 언감생심이지만, 골미실 풍수가 음택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길지 중 길지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특히나 그 터는 자손들 입신양명하고 재산이 샘솟듯 하여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 터라고 하니 세상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터는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구레실보다도 나을게 없는 골미실 같은 벽지에 이 씨들 선산과 재실이 있었다. 음택을 잘 쓴 덕분인지 이 씨들 집안에서 과거 급제자 수십 명이 나오고, 백석지기 천석지기 부자가 숫했다. 이 씨 자손들은 효심도 깊어 조상님들 음덕을 잊지 않고 선영 아래 만장 같은 늘르리 재실을 짓고 춘추로 향을 피웠다. 이 씨네 집안 제를 올리는 날이면 그 자손들과 월악산 인근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도 먹고 떡도 얻어먹느라 골미실은 난리법석이 되었다.

“자기 집안 재실을 뜯어 가는데도, 이 씨 집안에서 가만히 있었소?”

최풍원이 버들쟁이 구 씨에게 물었다. 집안에 과거급제자가 수십이고, 부자가 주렁주렁인데 아무리 판서 집안이라 해도 함부로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요. 김 판서네가 창말로 들어오기 전에는 이 씨네도 이쪽에서 행세깨나 했던 집안이란 말이오. 그런데도 자기들 재실을 헐어다 집을 짓는 봉변을 당하면서도 나서는 사람이 없더란 말이오.”

“그것참 이상하네. 자신들 조상님이 욕을 당하는데 어째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걸 보고 김 판서네 세도가 대단하다는 걸 알고 아무도 찍 소리를 못 한 것 아니겠소. 이 씨네도 행세를 못하는데 우리 같은 것들이 잘못 눈에라도 거슬리면 하루아침 땟거리도 안 될 것 아니겠소?”

김 판서네가 창말에 들어와 거정을 피워도 전혀 맞서지도 못하고 수굿하는 이 씨네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지레 기가 꺾였다. 그러니 김 판서네가 무슨 짓거리를 해도 아예 거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김  판서네가 이 씨네 재실을 뜯어다 창말에 집을 짓고 나서, 그다음에 한 일은 월악산 인근 모든 마을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며 사람들이 부치고 있는 땅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창말 전답뿐만 아니라 월악산 골골을 찾아다니며 산비탈에 손바닥만한 뙈기밭까지 조사해갔다. 창말 같은 큰 마을 인근에 있는 논이나 밭들은 예전부터 있던 것들이니 당연히 토지문서가 있었다. 그러나 골골이 산골짜기에 있는 비탈밭이나 뙈기밭들은 마을사람들이 입이나 그슬리려고 조막조막 개간한 것들이어서 문서를 만든다 해도 먹 값이 아까울 정도로 작았다. 김 판서네는 그런 것들조차 알뜰하게 찾아내 조사를 해갔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곧 김 판서네 속셈이 드러났다.

“땅세를 내라는 거요!”

버들쟁이 구 씨는 말을 하면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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