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허세가 젊은 축은 못마땅했다. 촌로는 촌로대로 젊은 축들이 못마땅했다. 자신들이 젊었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집안 어른이나 동네 어른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죽는 시늉까지 했다. 그리고 무조건 믿고 따랐다. 그러데 요즘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죽는시늉은 아예 싹도 없고, 사사건건 따지고 밝히려 들었다. 어떤 때는 아예 어른을 해넘기려고 달려들었다.

“에잉! 망조가 든 거여!”

촌로는 혼잣소리로 서운한 마음을 삭였다. 생각 같아서는 젊은축을 혼구멍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촌로의 생각일 뿐이었다. 혼낸다고 잠자코 들어줄 젊은축은 요즘에는 없었다. 혼내기는커녕 외려 동네 어른들이 젊은 것들 눈치를 보는 판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이 저리 변하는 것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란 것을 촌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죽어라 일을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은 구레골 사람들 잘못만은 아니었다. 구레골이 아무리 척박하다 해도 사람을 굶게 만들지는 않았다. 땅은 척박하고 손바닥만큼 좁았지만 구레골에는 월악산이 있었다. 그 산속에만 들어가면 약초들이 무수히 있었다. 힘은 들어도 그것만 캐면 가솔들 곡기는 끓일 수 있었다. 그러니 부지런히 일만 하면 땅은 사람을 굶어죽이지는 않았다. 사람을 굶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런 좋은 약초들이 있으면 그것도 우리 북진본방으로 넘겨주시오!”

최풍원이 얼른 끼어들며 촌로에게 말했다. 약초도 약초였지만, 두 사람을 그냥 두었다가는 종당에는 얼굴을 붉힐 판이었다.

“그전에는 약상들이 들어와 거둬갔는데…….”

촌로가 말끝을 흐렸다.

“어디서 약상들이 들어온답니까?”

“사방에서들 들어오지!”

촌로의 말이 전다지 허언은 아니었다.

월악산에는 약초 가짓수도 많았지만, 특히 그 약효가 뛰어나 이미 오래전부터 인근에 소문이 나있었다. 월악산 골골에는 심마니가 아니더라도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 전체가 약초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보고자라 자연스럽게 체득한 지식은 코흘리개 아이도 웬만한 약초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들 마을사람들 중에는 난리를 피해 들어왔다가 정착하며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피병을 왔다가 산중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산에서 약초를 캐게 된 사람들도 있고, 월악산 약초 소문을 듣고 들어왔다가 이곳에 반해 심마니가 된 사람들도 골골마다 살고 있었다. 월악산 산자락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은 밭에 반, 산에 반 목숨줄을 걸고 있었다.

“구 형, 구레골 사람들이 캐는 약초들을 나한테 넘겨주면 안 되겠소?”

“대주,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무슨 문제가 있답니까?”

촌로도, 버들쟁이 구 씨도 약초를 북진본방으로 넘기라는 말에 뭐가 켕기는지 대답을 주저했다.

“약초를 케도 그게 전다지 우리 게 아니니 어떻게 우리 맘대로 넘기고 말고 하겠소이까?”

촌로와 말싸움을 하던 젊은축이 그럼 산에서 제멋대로 나는 약초도 따로 주인이 있다는 말이오?”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오이까?”

젊은축은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외면을 하며 말했다.

“구형, 이건 또 무슨 말이오?”

최풍원이 버들쟁이 구씨에게 물었다.

“몇 년 전 저 아래 창말에 한양에서 왔다나 워데서 왔다나 김 판서네가 내려왔다오. 그 김 판서네가 내려오면서부터 월악산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 살림살이가 확 달라졌다오!”

“확 달라졌다는 것은 좋아졌다는 말이오?”

“양반님이 내려왔는데 그럴 리가 있소?”

“그렇다면 힘들어졌단 말이오?”

“당연한 것 아니오? 언제는 양반이 우리 같은 촌것들 생각해주는 것 대주는 보았소?”

“그야 그렇지만, 김 판서네가 내려왔는데 왜 월악산 인근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오?”

“월악산 인근 땅이 자기들 선조가 임금으로부터 공신답으로 받은 사토라는 거요. 그러니 토지세를 내야한다는 거요.”

“월악산 인근이 다요?”

“그렇다네요.”

“그래 어떻게 되었는가요?”

“어떻게 되기는 뭐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같은 촌것들이 무슨 수로 양반 말을 거스릴 수 있겠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